김기곤 기자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조선시대 양대 난 중 하나인 병자호란(1636)때 예조판서로 있으면서 청나라에 대항해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주전파)하다가 심양으로 잡혀간 김상헌(1570~1652)의 글이다. 

그가 이 글을 쓴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시절이 하수상’한 것만은 틀림없다. 너무 혼란스럽고 수상하다. 특히 서민경제(민생)가 말이 아니다. 가계대출금이 무려 1,300조원을 넘었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두 손 두 발을 들 집안이 한두 곳이 아닐 것 같다. 겨울 삭풍마저 매몰차게 불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즉 백성은 먹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게 위협받으면….

각자 제 살길을 도모하자는 ‘각자도생’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이다. 심지어 경제·군사 패권국인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날드 트럼프조차 자기 나라 이익만 챙기겠단다. 이미 체결한 FTA(자유무역협정)조차 무효화시키겠다고 하고, 공장도 자기 나라 땅에 지으라고 한다. 이 바람에 도요타를 비롯한 굵직한 기업조차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서 판매하려면 높은 국경세를 내라고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하수상(何殊常)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울산은 물론 한국의 대표기업인 현대차가 과장 이상 간부사원의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겉으로 말은 않지만 당사자들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일할 직장이 있는 게 어딘데…’라며 자위를 하겠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는 힘들 것 같다. 임원들도 지난해 보수의 10%를 반납키로 이미 결의했다. 이에 대해 일부 조합원들은 “엄살부린다” “쇼한다”며 회사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물론 모든 근로자에게 임금은 생활의 원천이다. 때문에 삭감이나 동결은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이를 회사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 같은 고육지책을 할 수 밖에 없다면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기업이 이 정도라면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은 불문가지다.

사실 현대차 안팎에서 일어나는 ‘하수상’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내수시장 점유율이 30%대로 급락했다. 전성기의 절반 밖에 안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이처럼 안방에서조차 고전을 하자 “현대차는 해외공장에서 벌어 먹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교토삼굴(狡兎三窟), 영리한 토끼는 비상시를 대비해 도망갈 굴을 세 개 만든다고 했다. 노조가 달갑잖게 여기던 해외공장 진출 덕분에 남다른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리는 것을 인정이나 하고 있을까. 아직 주주총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말이 나온 것 자체가 국내공장 근로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단순한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현대차는 2006년 간부사원 임금동결에 이어, 2009년에는 전 직원 임금동결을 한 바 있다. 그게 약(藥)이 됐는지, 이후 안정세를 찾았다. 그러다가 올해 다시 임금동결 처방을 하기로 했다. 돌고 도는 세상이라서 그런가 모르겠다. 전문가들은 “올해 전 세계 자동차산업 성장은 1%대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뜩이나 공급이 넘쳐나는 데 1% 성장이라는 것은 뒷걸음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건 모르겠고…”라며 남의 일로 치부한다면 위험천만한 회피심리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는다. 이게 세상이치다. 좀 생뚱맞은 얘기가 될지 모르나, 윈드서핑의 기본은 바람과 물결에 잘 순응하는 것이다. 이를 거스르면 사고가 난다. 기업도 다를 바 없다. 100년 기업, 500년 기업이 성장가도만 달려온 것이 아니다. “그 때의 시련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한결 같은 얘기다. 같은 풀도 쓰기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된다.

현대자동차는 울산의 보배기업이다. 올해는 100년 기업을 향한 ‘리 스타트(Re-start)’를 해야 하는 50년 기업이다. 이 회사가 잘 돼야 관련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도 함께 잘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임직원 당사자부터 정확한 상황인식과 현명한 대응을 해야 한다. 현대차는 간부와 임원만 일하는 곳이 아니다. 회사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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