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 의도 있어야 국기 모독 혐의 적용…당사자 "의도 없었던 우발적 행동" 주장
세월호 추모집회서 태극기 태운 20대 무죄 선고…경찰 추가조사 후 입건 여부 결정

 

탄핵 반대 집회에서 태극기를 불태운 20대를 붙잡아 수사 중인 경찰이 '국기 모독죄' 적용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지난 26일 청주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 태극기를 태운 A(21)씨가 우리나라를 모독할 의도는 없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기 때문이다.

국기 모독죄는 대한민국을 모독할 목적으로 태극기나 국가 휘장을 훼손해야 성립된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A씨는 지난 26일 오후 2시께 상당구 상당공원에서 열린 '탄핵 기각 충북 태극기 집회'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태극기 1장을 주워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태웠다.

A씨는 집회 참가자 B(59)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지구대로 임의동행됐다.

B씨는 태극기에 불을 붙인 A씨를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둘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우연히 탄핵 반대 집회를 목격했다는 A씨는 집회에서 주장되는 내용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는 곧 인근 마트에서 시너를 구매해 집회 현장으로 돌아와 땅에 떨어져 있던 태극기에 불을 질렀다.

A씨는 경찰 조사와 언론 인터뷰에서 태극기를 태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계획하지 않은 돌발 행동이라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태극기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용도에 맞지 않게 태극기를 사용해 화가 났을 뿐 국가를 모독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B씨는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을 말리는 과정에서 A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욕설을 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이날 약 1시간 가량 조사를 받은 후 귀가했다.

청주 탄핵 반대 집회서 태극기에 불을 붙이는 20대
청주 탄핵 반대 집회서 태극기에 불을 붙이는 20대  [독자 제공 = 연합뉴스]

A씨가 일관되게 국가나 국기를 모독할 의도가 없다고 주장할 경우 국가 모독 혐의에 의한 형사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사법부가 지난해 집회에서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에 대해 국기 모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전례가 있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태극기를 불태운 혐의(국기 모독)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24)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은 경찰이 물대포 등을 쏘자 격분해 태극기를 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면서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을 모독할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5년 4월 18일 서울·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에서 태극기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태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도 탄핵 반대 집회에 태극기가 사용되는 것에 격분, 우발적으로 불을 붙인 것뿐이라고 김씨와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경찰은 국가를 모독할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A씨에게 국기 모독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국기모독죄 적용이 어려울 경우 공공장소 소란 등 경범죄 처벌법 적용이 가능한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태극기를 불태운 자세한 경위와 정황을 조사 중"이라며 "조사를 마치는 대로 적용 법률을 검토한 뒤 입건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이번 주 중 A씨를 다시 불러 추가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형법 제105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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