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우왕때 유배온 정몽주 즐겨 찾아…‘포은대’로도 불려
1995년 이후 ‘반구대=암각화’ 인식 굳어지며 관심 멀어져
일각선 반구서원·반고사지·집청정 연계 市문화재 지정 주장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듯한 형상의 구릉인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의 전경. (울산매일 포토뱅크)

고려말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가 외교문제로 언양에 유배 왔을 때 즐겨 올라 시를 읊었던 울산 울주군 반구대(포은대)에 대한 역사적인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울산대곡박물관 등에 따르면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는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에서 대곡천을 따라 1km 남짓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구산 끄트머리에 위치한다.

이 산 끄트머리에는 편편하게 펼쳐진 너럭바위와 함께 ‘盤龜(반구)’라는 한자와 학(鶴) 두 마리가 크게 음각된 바위절벽이 나오는데 이 곳이 반구대다. 맞은편에는 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집청정 정자가 있다.

이 반구대는 포은이 고려 우왕 때인 1376년에 ‘친원배명 정책(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자는 정책)’에 반대하다 언양현에 유배됐을 때 즐겨 찾았던 곳이라 해서 ‘포은대’로도 불린다. 실제 정몽주의 <포은집>에는 반구대에 올라 읊은 한시가 수록돼있다.

이를 계기로 반구대는 포은을 숭모하는 조선 선비나 시인묵객들이 답사하는 유람길로 유명해졌다. 숙종은 1712년에 포은 등을 기리는 반고서원(반구서원)을 인근에 건립했고, 그 이듬해에는 운암 최신기가 반구대 맞은편에 집청정 정자를 세웠다.

이후 반구대는 반고서원, 집청정과 함께 대곡리 대곡천 명소로 널리 알려졌고, 겸재 정선의 화첩 <교남명승첩>에도 반구대와 집청정 풍경이 담겨있다.

하지만 반구대는 197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 대곡리 암각화가 1995년에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됐다. 대곡리 암각화 명칭이 ‘반구대 암각화’로 정해지면서 ‘반구대=암각화’라는 등식이 성립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화계와 학계에서는 이제라도 ‘원조 반구대’격인 반구대(포은대)를 반구대 암각화와 분리해 재인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보로 지정된 뒤 전세계적인 학명처럼 인식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의 명칭을 바꿀 순 없지만, 선비들의 유람길로 유명했던 반구대(포은대)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반구대를 반구서원과 반고사지(원효대사가 저술활동을 한 것), 집청정 등과 연계해 시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 반구대 일대를 시지정문화재로 만들려는 시도는 없는 상태다.

신형석 대곡박물관장은 “삼국유사에는 원효대사가 반고사에서 저술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반구대를 반고사터, 반구서원, 집청정과 연계할 경우 역사적 의미로나 관광자원으로서나 시지정기념물, 또는 국가명승으로서의 가치까지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울산시문화재위원회 양명학 위원장은 “반구대는 포은 정몽주가 시를 읊으며 시름을 달랬던 곳으로 조선선비들의 유람길이었다”면서 “문화재적인 가치는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훼손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시문화재자료’로 지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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