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대숲 그늘 속에 들어선 정자 툇마루. 거기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조용히 바둑돌을 놓으며 보내는 느긋한 휴가를 생각해 본다. 처마 끝에 빗물이 후드득 쏟아지는 날, 서늘한 한옥 마루에 책을 베고 누워 혼곤한 낮잠에 빠지는 휴가는 또 어떨까.

바야흐로 휴가마저도 스트레스가 되는 세상이다. 남들의 행복한 휴가가 SNS에 실시간 생중계 되는 세상. 남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멀리 떠나서, 더 바쁘게, 더 화려하게, 더 고급스럽게 놀아야 남을 앞설 수 있다는 얘기다. 쉽지 않은 일이다.

배터리 완전 방전, 다들 과로로 지쳐있다. 휴가는 사실 이럴 때 더 필요하다. 더 이상 남은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남들과의 경쟁으로 심신이 피곤해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휴가를 떠나야 할 때다. 이런 휴가의 목적지라면 교통체증이나 바가지상혼, 소란만 가득한 떠들썩한 피서지 말고, 정물 같은 풍경과 고요한 휴식이 있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여름 한달간은 무조건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한다. 연초부터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한국식 문화로 보자면 그들은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1인당 연간 2,069시간을 일하는,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둘째로 긴 근무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이 아닌가.

그렇다고 프랑스(유럽)인들이 베짱이처럼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우리보다 할 일을 더 잘한다. 노동생산성이 한국의 두 배다. 근로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이 프랑스는 61.62달러, 한국은 31.77달러다. OECD평균(46.74달러)에도 훨씬 못 미친다. 

펑펑 놀고도 공부만 잘 하는 학생 같다. 한 달을 쉴 수 있다는 것은 나머지 11개월 동안 업무가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경제 개발 시기에 집단 과로시대를 보냈다. 지금은 자기성취를 위해 과로한다. 스스로가 과로의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셈이다. 자기착취가 타인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인 건 그것이 자유롭고 자율적이라는 착각 속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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