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직불금 받고 고가로 팔아온
친환경 인증 계란서 살충제 검출
순진한 소비자만 바보 만든 꼴

흙목욕 할 수 있냐 못하느냐 따라
‘고시원’ 출신이냐 ‘호텔급’이냐
여전히 친환경 계란이라면 불티

 

욕심쟁이 할머니가 많은 닭을 치고 있었다. 그 많은 닭 중에 다른 닭은 알을 안 낳는 날도 있었지만 그 닭만은 날마다 알을 잘 낳아 할머니는 특별히 사랑했다.

할머니는 그 닭에게 모이를 갑절 주면 하루에 계란을 두개씩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날부터 두 갑절의 모이를 더 주었다. 

모이를 주는대로 잘 받아먹은 그 닭이 몰라보게 살이 찌자 할머니는 이제 계란을 두개씩 낳으려니 하고 기뻐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매일 한개씩 낳던 계란을 어느날은 하나도 낳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 걸러 낳기 시작해 할머니는 모이를 더 많이 먹였더니 닭은 점점 더 살이 쪘다. 그러더니 어느날부터는 알을 전혀 낳지 않았다.<이솝우화/욕심쟁이 할머니와 닭>.

군사과학에 ‘닭 대포(chicken gun)’라는 게 있다. 자그마치 길이 18m의 포신에서 무게 1.8kg 가량의 죽은 닭들을 시속 650km로 쏘아대는 발사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러기나 갈매기, 오리 대신 항공기를 향해 죽은 닭들을 쏘아 올려 실제 항공기가 ‘버드스트라이크(birdstrike)’를 견디는 정도를 측정한다. 

‘닭 대포’는 매년 미공군 항공기와 3,000번 이상 충돌하며 5,000만~8,000만 달러의 손해를 입히고, 탑승자의 목숨을 불시에 위협하는 새 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는 실험을 한다. 

정유년(丁酉年)의 주인공 닭이 AI(조류 인플루엔자)로 수난을 겪더니 이번엔 ‘살충제’ 파동으로 계란이 수난을 겪고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산란계 농가 68곳의 계란에서 피프로빌 등 살충제가 검출된 것이다. 이중 37곳은 허용 기준치 이하라고는 하지만 검출돼서는 안될 물질이 나온 것이다. 건강을 생각해 비싼 친환경 계란을 사먹은 소비자들만 바보가 된 셈이다.

친환경 농가들은 정부로부터 연간 최고 3,000만원의 직불금을 받고 고가로 계란을 팔면서도 엉터리 위생관리를 했으니 소비자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론 비좁은 닭장에서 닭을 기르는 밀집사육 환경이 지목되고 있다. 밀집사육 환경에서는 진드기·벼룩 같은 해충을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썼다.

닭 진드기는 흡혈귀다. 털과 피부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닭 혈액의 5%까지 포식한다는 연구도 있다. 번식력도 엄청나 두 달이면 성체가 1만배까지 불어난다.

마당에서 뛰어놀던 닭들은 날개를 퍼덕여 흙을 끼얹으면서 몸에 붙은 진드기나 벼룩을 털어내는 흙목욕을 한다. 하지만 ‘철제우리’에 갇힌 닭들은 약을 뿌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살충제가 닭 목욕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밀집 사육장이 ‘고시원’이라면 동물복지 마크를 받은 닭들은 사실상 ‘호텔’급에서 자라는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밀집사육 계란 추방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유통업체인 미국 월마트와 3위인 영국의 데스코는 밀집사육 계란을 100% 퇴출키로 했다.

해외유통 업계에서는 대형마트가 나서면 밀집사육 계란 유통을 확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판매처가 확보되고 수요가 커지면 계란 농장도 자연히 새로운 생산 시스템에 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 유기농 계란만 생산한다면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없다. 당분간 친환경 살충제를 보급해 밀집사육 농가가 쓰도록 하면서 공장식 산란을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

살충제 계란 파동 속 한 알에 1,000원씩 하는 친환경 계란이 불티나게 팔린다. 사실상 고소득 계층만의 계란 빈부격차 시대가 열리게 된다.

농식품부는 계란 이력 추적제를 2019년 조기 도입키로 했다. 계란 유통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지는 10년이 넘었다. 안전한 계란을 위해 갈길이 여전히 멀어보인다. 계란 수백개를 한꺼번에 먹지 않는 한 괜찮다는 설명으로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산다. 정직한 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부정직한 사회에서는 부정직한 사람으로 산다. 법보다 자연스러운 윤리나 도덕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계란 이력서’ 하나만으로도 정직한 사람으로 살게 하느냐 부정직한 사람으로 살게 하느냐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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