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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아이돌' 설경구가 알려준 '배우의 기억법'

기사승인 2017.09.14  00:00:00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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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할 때는 무조건 동료…나이들수록 절실함이 크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 (사진=쇼박스 제공)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다.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20~30대 팬들은 그를 사랑하며 환호한다. 영화 '불한당'에 이어 '살인자의 기억법'까지, 연타로 슬럼프를 완전히 떨쳐버린 이 배우의 이름은 설경구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설경구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의 기량을 펼쳐 보인다. 배우와 역할 간의 경계는 사라지고, 설경구가 곧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이며 김병수가 곧 설경구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설경구는 '연기를 계속 힘들어했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긴 어둠을 지나올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살인자의 기억법' 촬영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이 생긴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힘든 시간을 견뎌 지금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설경구의 기량일 것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존재하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권위 없이 여전히 연기라는 안갯속을 헤매는 성장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음은 '도전할 것이 많아 오히려 고마웠다'는 24년 차 배우, 설경구와의 일문일답.

 



▶ 원작소설이 있는 시나리오였다. 처음에 제의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나.

- 내 자신의 연기를 한창 힘들어하던 때였다. 공허하게 이대로 가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이 시나리오를 건네주는데 너무 고마웠다. 해결해야 될 부분, 도움 받아야 될 부분이 많은 캐릭터라 고마웠다. 

▶ 첫 시사회에서는 자신의 연기 중 어떤 부분을 가장 눈여겨 보게 되던가.

- 외형이 굉장히 신경쓰였다. 겉모습을 보고 가짜같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계속하면서 봤던 것 같다. 가발이 이상하게 휘날리면 저게 왜 저러지, 얼굴 잡티가 일정하지 않고 왜 그렇게 도드라져 보이지, 이런 고민들을 했다.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사소한 외형에 집착하면서 본 것 같다. 창피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소설은 70대 노인인데 어쨌든 영화에서는 그보다는 젊은 나이대다. 급격히 다이어트를 하면서 외형에 변화를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그렇게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 특수분장으로 해결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영화에서 병수는 50대 후반이다. 그런데 내가 젊은 시절과 차이를 더 주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60대 정도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특수분장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초반에
배제했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인물인데 표정이나 경련을 보여주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게 다이어트 밖에 없는 거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 (사진=쇼박스 제공)

▶ 정신적으로 많은 집중이 필요한 연기였을 것 같고, 본인 역할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계속 그 몸매를 유지해야 하는 다이어트가 힘들지는 않았나?

- 나이가 있다 보니 빠질까 걱정을 했는데 살은 정직해서 한만큼 빠져주더라. 나도 모르게 촬영 현장에서 김밥을 막 먹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피 같은 쌀을 뱉어야 되고…. 빼는 걸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긴 했다. 뭘 안 먹어도 살이 찌는 것 같고 심리적으로 강박증이 생기더라. 서울에 있다가 지방 촬영장으로 다시 가면 혈색이 좋다는 말을 듣는데 그러면 괜히 긴장하고,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상처받았다. 처음에는 아침 공복에 몸무게 재고 감독님한테 열심히 한다며 사진 보내고 그랬다.

▶ 첫 촬영날 그렇게 몸을 만들어가니 원신연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

-대전에서 첫 촬영을 했다. 너무 긴장하고 불안해서 시작 5일 전에 매니저에게 촬영장 있는데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매니저는 서울로 올려 보내고, 혼자 숙소에 자진 감금한 상태에서 운동하고 그랬다. 너무 비참해서 라면 두개에 참치 통조림 반개를
먹긴 먹었을 거다. 그러고 살이 쪽 빠져 있는데 촬영날 감독님을 만나니 말은 걱정하는데 얼굴은 좋아하더라. (웃음)

▶ 소설 속 병수와 달리 영화 속 병수에게는 열어 놓은 설정들이 더 많다. 완전한 연쇄살인범이라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딸 은희를 향한 부성애도 허상이 아닌 진짜다. 병수를 좀 더 다양하게 만든 이런 설정들이 연기하기에는 좋았나.

- 영화는 병수에게 좀 풀어줬다. 소설처럼 쾌감에 의해 살인을 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 설득력은 없어도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그러니까 은희와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풀어졌던 것 같다. 소설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관계도 있고, 폭넓지는 않지만 반응도 하고, 여지를 많이 줘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다. 

▶ 결말이 굉장히 열린 결말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연기한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 마지막에 얼굴에 경련이 일면서 영화가 끝났는데 김병수의 앞날이 무거웠다. 매듭지어 주는 게 아니라서 그의 삶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았다. 계속 무언가 갈 것 같은데 그러면 병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몸은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냥 치료소에 두지 왜 퇴원시켰는지 그런 걱정이 됐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퇴원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장면이 있었던 걸 아니까 오히려 집으로 가는 그게 더 무섭고 끔찍했다. 감독님 의도에 따라 일부러 그 (퇴원하는) 장면을 들어낸 것 같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 (사진=쇼박스 제공)

▶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있다는 걸 본인도 알 것 같다. '불한당' 이후 20~30대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늘었는데 이번 '살인자의 기억법' 병수 캐릭터의 외적인 모습을 아쉬워할 수도 있겠다.

- 스태프 막내가 '불한당원'(영화 '불한당'의 팬을 이르는 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을 보여줬더니 제발 개봉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웃음) 개봉 하고, 말고를 내가 어떻게 결정하느냐고 했더니 얼굴이 갑자기 늙어버려서 좀 슬프다고 그랬다. 응원을 많이 해주시고, 책임감도 있고, 조심스러운 것도 있다. 작품 선택할 때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번 할 때마다 불한당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없고, 모든 팬들의 입맛을 다 맞출 수는 없지만 내가 선택한 작품으로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 '불한당'의 임시완도 그렇고, '살인자의 기억법'의 설현도 그렇고 유독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들과 호흡을 많이 맞추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잘못된 권력이 될까봐 조언을 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원래 그런 걸 상당히 경계하는 편인가.

- 나는 그들이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 본 적이 없다. 같은 영화를
하는 배우면 선후배 사이도 아니고 그냥 같은 동료이고,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인거다. 물론 저렇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는데 입밖으로 뱉어서 이렇게
하라는 건 선배라는 권력인 것 같다. 그러면 일단 후배가 자기 연기를 못하고 그렇게 한 번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걸 싫어한다. 연기할 때는 무조건 동료다. 감독이 하는 조언과 같은 배우가 하는 조언은 다른 것 같다. 내 몇 마디가 정말 그 사람을 주눅들게 할 수도 있다. 

▶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장 고되고 힘들었던 지점은 무엇이었을까.

- 내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잠을 못 자겠더라. 삼시세끼를 해결하듯이 하루가 길고, 내일이 너무 걱정됐다. 감독님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많이 물어봤다. 병수가 그렇다. 정상적인 인물은 아닌데 일상을 살지 않는 인물은 또 아니다. 묘하게 남들과 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감독님이 주문을 하면 해보기는 해보겠다고 그랬다.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한 번 해볼게요.

▶ 이미 20년이 넘게 경력을 쌓은 배우임에도 매 작품, 작품마다 신인 못지 않게 절박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배우들이 자기 캐릭터를 위해 열심히 고민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절실함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시행착오가 많았을 거고, 생각의 폭도 더 넓어져야 되는 것 같다. 나도 수십년을 정체하면서 살았었다. 이렇게 타락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냥 또 한 작품 끝났구나, 이랬었고, 훅 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런 전투력은 아닌 것 같다.  

노컷뉴스

기사 수정 :   2017-09-13 20:26   관리자
웹출판 :   2017-09-13 20:40   관리자
입력.편집 :   2017-09-13 20:18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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