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률 98%인 롱먼 원전의 건설을 중단한 대만의 사례는 문재인 정부에게 ‘대만도 하는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심리적 에너지원으로 작용돼왔다. 하지만 대만 행정원과 경제부 섭외는 쉽지 않았다. 8·15 대정전 이후 행정원과 경제부 수장이 바뀌면서 정부기관은 몸을 사렸고, 집권여당인 민진당 역시 인터뷰 요청에 ‘한다’, ‘만다’는 확답 대신 ‘기다려 달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시간을 끌었다. 결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민진당 의원과의 서면 인터뷰로 대체됐고, 그마저도 형식적인 회신이었다. 대신 대만의 반핵운동가인 류화젠 대만대학 사회학부 부교수와 홍선한 녹색공민행동연맹 사무처장이 정부와 여당을 대신해 탈원전 의지를 강조했다.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건 제1야당인 국민당의 쯔앙리쓰안(대만 입법원 경제위원회) 위원이었다. 꼭 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섭외 코디네이터를 통해 여러 차례 취재진에 전해왔다. 대만 야당 의원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려는 한국에 하고 싶은 얘기는 뭘까 들어봤다.  

 장시간 사회적 소통 거친 후
‘국민투표’로 결정하려 했던
 롱먼 운명 국회 협의과정 없이
 정부가 일방적 건설 중단 발표

 정부 잘못된 정책 추진으로
 전 국민이 추가비용 부담해야
 재생에너지 개발 시급한 과제
 미숙단계서 원전 폐지 힘들어

 

대만의 제1야당인 국민당 쯔앙리쓰안(대만 입법원 경제위원회) 의원과의 인터뷰는 일정상 서면으로 진행됐다.

차잉잉원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현 정부는 ‘2025년 원전 제로’라는 ‘신주’를 떠받들고 있다.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 전기사업법을 긴급히 수정, 10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녹색에너지 비중을 늘리려 한다.

정부는 툭하면 개혁을 논하고, 또 ‘개혁은 반드시 진통기간을 거친다’고 하는데 사실 개혁이란 그 현실성을 조심히 살피고 적절한 관련조치도 마련돼야 한다. 

특히 ‘원전 제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인 만큼, 갑자기 원전을 폐한다는 건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대만은 에너지의 98%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섬나라다. 우리의 전력망은 다른 국가와 연결해 전력을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력이 부족하면 자체 해결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석유나 석탄가격이 폭등해 발전원가가 상승할 경우 정부는 기존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나. 보장할 수 없다면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전 국민이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되는 게 아닌가. 

녹색에너지 비율을 갑자기 높인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인데, 그 공백 기간동안 화력발전에 모든 전력을 의존할 경우 대만의 공기오염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거다. 

에너지 다원화인 시대에 화력이건, LNG이건, 재생에너지이건, 원전이건, 어느 것 하나 포기해선 안 된다고 본다. 최적의 에너지 조합(Energy mix)이 필요하단 얘기다. 롱먼 원전을 영구폐쇄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차이 정부는 ‘2025년 원전제로’를 실현하지 못할까봐 행정원의 결의를 통해 대만전력청이 원전을 가동하지 못하도록 계속 막고 있다. 

일례로 각 원전소마다 수명 40년인 장비가 2기씩 있는데, 2호기가 보수로 가동이 중단된 지난 6월 초에는 제3원전소의 1호기만 가동했었다.  

롱먼 원전의 건설 중단을 결정한 건 국민당이 먼저라고 들었다.

▷과거 우리 국민당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소통을 거쳤다. 그래서 롱먼 원전 1호기(공정률 98%)는 준공하지 않고 안전 검사 후 봉인하며, 건설이 미미한 2호기는 공사 일체를 중단하기로 했다.

실제 2013년 4월1일 우리당 출신의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행정원장은 12명의 ‘원전감독 엄마 연맹’ 회원을 총통부로 초대해 좌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장시간의 사회 소통 후 ‘국민투표’를 통해 롱먼 원전의 미래를 결정하려고 했다. 이는 반핵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한 회답이었고, 이런 과정이 국민 모두에게 중대한 정책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민진당은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고집했다.
 

롱먼 원전 건설중단을 결정하기까지 갈등이 컸을 것 같다. 국회에선 어떤 정치적 협의 과정을 거쳤나?  

▷롱먼 원전 건설을 중단한 건 민진당의 전임 첸수이벤(陳水扁) 총통 때였다. 당시 행정원장은 장쭌숑, 야당이었던 우리 국민당의 주석은 렌쯔안이었다.  

그런데 렌쯔안 주석이 첸 총통을 만나 회담하던 10월 27일 오후, 행정원장은 롱먼 원전 건설 중단을 발표해 정치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 날 렌쯔안 주석은 첸 총통에게 제호 원전과 제2호 원전의 가동을 미리 종료하는 대안으로 롱먼 원전을 계속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서를 전달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시간에 행정원은 롱먼 원전의 건설 중단을 발표한 거다. 

총통부를 나선 렌쯔안은 국민당 중앙당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자들에게 에워싸인 채 ‘롱먼 원전 건설 중단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를 치욕으로 여긴 렌쯔안은 파면운동을 추진했다. 정치협상? 그런 건 없었다. 

대만은 탈원전으로 인한 국민 부담이 없나?

▷차잉 총통은 선거공략으로 ‘10년간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 ‘10년간 민생용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나중엔 ‘기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라고 말을 바꿨다. 결국 반핵에 투입된 원가는 분명 전기요금에 반영될 것이다. 

독일도 근 10년간 전기요금이 벌써 4배나 올랐다. 현재 대만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낮다. 

올해 여름 대만전력청은 6월1일부터 4개월간 여름철 전기요금제를 적용했는데, 전기요금률이 다른 계절보다 13~27% 증가하고 가구당 평균 사용 전기도수가 121도 증가해 매 가구당 전기요금 지출이 다른 계절에 비해 NTD 446달러(근 80%)나 증가했다.

한국 사회에 해줄 조언이 있다면

▷전세계 반원전국가 4개국 중 대만을 제외한 3국은 사실상 (원전 폐지를)고집하지 않는다.
 
스위스는 반원전을 포기했다. 스위스 전력의 40%는 원전에서 공급 중이다. 스위스 국회는 왜 원전 폐지에 시간 설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가. 다수의 스위스 국회의원들은 “정상 가동 중이고 또 안전한 원전을 폐지하는 건 무의미하고, 잘못된 일이다”고 말한다. 

벨기에는 2015년까지 원전을 종료하기로 했는데 아직 가동 중이다. 독일도 2015년까지 원전의 비중이 14%였다.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일본과 미국, 러시아는 왜 여전히 원전을 사용하는가. 

현재 대만은 재생에너지 개발이 시급한 과제이고, 그런 미숙한 단계에서 원전을 미리 폐지할 필요는 없다. 원전이 가장 깨끗한 에너지라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원전은 화력발전처럼 공기오염문제도 없다. 

외국 사례를 보면 차잉 총통의 2025 원전제로 정책은 대만 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계기가 될지, 위기가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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