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최은희, 신필름예술영화제 개막식 참석

 

 

원로배우 최은희가 18일 오후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에서 열린 '신(申)필름 예술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영화계의 전설적 배우 최은희(91)가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50∼197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고 신상옥 감독(1926∼2006)의 부인인 최은희는 최근 건강 악화로 위독설이 돌았고 외출도 삼가왔다.

최은희는 18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열린 제1회 신필름예술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영화제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단상 바로 앞에 자리했다.

그는 사별한 남편을 기리는 영화제의 출발을 맞아 감회에 젖은 표정이었다. 몸을 움직이기 어렵고 대화도 원활하지 않아 보였지만, 지인들과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안부 인사를 했다. 검은색 모피코트와 카키색 챙모자 차림에 흰 장갑과 귀걸이까지, 한 시대를 주름잡은 여배우의 풍모는 여전했다.

신필름 예술영화제 참석한 최은희
신필름 예술영화제 참석한 최은희 원로배우 최은희가 18일 오후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에서 열린 '신(申)필름 예술영화제' 개막식에서 참석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은희의 아들이자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신정균 감독은 "신장 투석과 합병증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오늘 몸 상태가 괜찮으신 것 같아 모셨다"고 말했다.

최근 폐암 진단을 받았다가 건강을 되찾은 배우 신성일은 단상에 올라 "사랑하는 최 여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신상옥 감독과 저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며 신상옥 감독의 제작사 신필름을 통해 데뷔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신인배우 모집에 3천 명 넘게 몰렸습니다. 기마경찰대가 와서 교통정리를 할 정도였죠. 사무실에 갔더니 최 여사님과 신 감독님이 계셨습니다. '내일부터 신필름에 나와라'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예명을 지어주셔서 평생 신성일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습니다."

밝은모습의 신성일
밝은모습의 신성일 배우 신성일이 18일 오후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에서 열린 한국영화계 거장 신상옥 감독을 기리는 '신(申)필름 예술영화제'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최은희는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세미다큐멘터리 '코리아'(1954)를 찍으면서 신상옥 감독과 만나 결혼했다. 이후 '로맨스 빠빠'(196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1), '빨간 마후라'(1964) 등에 출연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활동했다. 1965년에는 '민며느리'를 연출하며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1978년 납북사건은 최은희·신상옥 부부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최은희는 안양예고 교장으로 있던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고 그를 찾으러 홍콩에 간 신상옥 감독 역시 북한에 끌려갔다. 부부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최은희는 당시 찍은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최은희-신정균, 어머니와 아들
최은희-신정균, 어머니와 아들 원로배우 최은희(왼쪽)과 신정균 감독이 18일 오후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에서 열린 한국영화계 거장 신상옥 감독을 기리는 '신(申)필름 예술영화제' 개막식에서 손을 잡고 있다. 

8년만인 1986년 오스트리아 빈의 미국대사관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 부부는 망명생활을 하다가 2000년 귀국했다. 신상옥 감독은 2006년 세상을 떴다.

신필름예술영화제는 국내에 처음으로 할리우드 프로덕션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신상옥 감독의 업적을 기리고자 올해 처음 열렸다. 19일까지 독립영화 20편을 상영하고 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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