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소설가 오영수 장남이자 민중미술 선구자 오윤
그의 따뜻한 작품들로 지역 미술계서 버틸 용기 얻어
앞으로 지역 미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전달하고파

 

김근숙 G&갤러리 관장

오윤이 1946년 개띠생이라니!

올해 무술년을 맞아 개띠 작가를 찾아봤다. 그중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던 판화가 오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수많은 개띠 작가들 중 왜 오윤을 선택했을까. 첫번째 이유는 오윤이 울산의 자랑인 소설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 선생의 장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오윤 회고전도 그 의미를 더한다. 지난 2006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펼쳐진 오윤 20주기 회고전의 개막행사에 다녀왔을 때도 민중미술계열 작가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려 놀라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이후 시간은 제법 흘렀지만,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오윤 회고전을 또 볼 수가 있다는 것에 놀라움이 앞선다. 물론 좀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전시 기간이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분명하다. 

오윤 작가는 1988년 아티스트 스페이스 화랑(뉴욕), 1993년 퀸즈 미술관(뉴욕)에 이어 일본, 프랑스 등에서  ‘Minjoong Art‘라고 소개되며 민중미술을 알리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삶과 예술의 결합을 주장하는 민중미술을 직설적으로, 투쟁으로 그려냈다. 또 선동하는 색채가 아닌 부드러운 힘으로, 우리 현실과 힘겹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해학과 소박함으로 담담하게 위로했다.

아버지 오영수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학과에 다닌 오윤의 학생 시절, 그의 조각작품에 ‘개도치’라고 작가 사인한 것이 있다. ‘개도치’는 월북 소설가 벽초 홍명희가 쓴 대하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개’나 ‘도야지’를 뜻하는 ‘개도치’처럼 자신을 ‘좀 미련하면서 우직한 사람’이라 스스로 낮춰 부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탈춤과 판소리, 민요, 무속, 민화, 민예 등의 날선 그림과 민중운동을 위한 걸개그림, 벽화 등의 현장그림에서 세상의 이웃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이웃의 고단한 삶을 외면하지 않는 시선이 그대로 보인다. 

오윤 20주기 회고전 ‘낮도깨비 신명마당’ 개막행사로 열린 ‘오윤의 생애와 작품세계‘ 주제의 학술토론회에서 은사와 많은 선배를 만나 벅찬 감동과 자랑스러움을 새겼다. 그동안 울산지역의 미술계에서 힘겹게 활동해온 필자에게 커다란 울림이자 버팀목이 된 계기이기도 하다.

살림이 어려운 미술가에겐 두툼한 도록이 부담이지만, 단번에 결제하고 전리품인양 품에 꼭 껴안고 울산에 내려왔다. 2008년 ‘제4회 울산민족예술제 도깨비 난장’의 포스터에 실린 낮도깨비 이미지는 그 도록을 두고두고 보면서 떠오른 것이다. 지금 그 도록은 2012년 울산매일신문에서 발간한 오영수 문학상 20회 수상작품집과 나란하게 꽂혀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한 그 모습을 볼 때면 더딘 시간 속에 있는 지역 미술계를 보면서 위축돼 있는 필자를 다시 한 번 힘이 나게도 만든다.

‘울산은 산업도시라서 그래’, ‘노동자 도시잖아.’ 문화예술에 대한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그냥 하는 게 어때서!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학부 때 김윤수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었던 책이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미술이야기라기 보다는 무언가 먹먹하면서 짠한 서양미술관 기행 이야기이지만 다른 미학서적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주위 그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하기도 했다.
필자는 ‘나의 울산미술순례’를 산책하듯이, 울산의 미술 흔적을 찾아나서는 퍼포먼스를 즐기고자 한다. 울산매일신문 지면을 통해서 울산미술의 길라잡이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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