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국여성대회에서 홍준표 대표가 축사를 하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미투 기획" 발언이 용기를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들에게 2차 가해를 입혀 물의를 빚고 있다. 홍 대표를 위시한 자유한국당이 미투 운동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국민들 수준을 낮게 본 데서 나오는 정략적 행태라는 비판이 인다.

한국 보수주의 이념의 특징과 역사를 연구해 온 정치학자 이나미(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연구교수는 8일 "홍준표 대표의 (미투 운동 관련) 발언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오히려 '(정략적으로) 아주 잘 됐다'며 즐긴다는 느낌까지 주는 대단히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홍 대표는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사이 오찬에 참석해,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안희정 사건이 탁 터지니까 제일 첫 번째는 임종석이가 기획했다고 소문이 이미 쫙 퍼졌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당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미투 운동이 나와 최교일 의원을 겨냥하고 시작한 운동처럼 느꼈다. 그런데 그게 자기들한테 갔다"고 했다.

이나미 교수는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성폭력 문제가 연이어 터지는 와중에, 미투 운동과 진영 논리를 연결시켜 반사이익을 노리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하지만 결국 (홍 대표의 발언 등은) 현재 고정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에게만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며 "민주당에서 이러한 일이 터진다고 해서 자유한국당 측이 자기네 당에 유리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민들 수준을 낮게 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자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유한국당에는 약자를 보호하는 문화 자체가 없기 때문에, 미투 운동 과정에서도 보호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성폭력 피해 폭로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 문제가 항상 후차적으로 취급돼 온 한국 사회에서 정권 교체 이후 봇물 터지듯이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여성은 마지막 식민지다' '여성은 조국이 없다'는 말처럼 진보 진영 안에서조차 그동안 민주화운동, 정권교체라는 대의 앞에서 여성들은 희생을 강요받아 왔다"며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 미투 운동을 통해 진보 진영에서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져가는 것은, 고통스럽더라도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보수 진영에서 오히려 여성 문제에 열린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여성 그룹은 노동자 등 여타 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위협이 크지 않다고 인식하는 데 따른 결과다. 재산권을 지닌 여성의 경우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그는 "보수 진영 안에서 사회 빈민이나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한, 여성이라는 추상적 담론은 구체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미투 운동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던지는 자극적인 발언들보다는, 그들이 지닌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신념·이데올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바로 여성 문제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의지가 있는지를 점검하는 '역사적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그간 현실의 여성 일자리·임금 격차·육아 문제 해결 등 성평등 실현을 위해 어떠한 정책적 노력을 했고, 비전을 내놓는지 우리는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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