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먼 저수가 체계에 각종 의료사고 빈번
근본적인 개선 없인 문재인 케어 성공 미지수
이번 기회 발판 삼아 의료시스템 혁신 나서야 

 

이종철 울산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필자는 13년 전 전공의 시절, 운 좋게도 해외의 원하는 병원으로 한 달간 파견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하버드 의대의 이비인후과 병원을 선택하고 보스턴에서 한 달간 보낸 적이 있다. 

진료에 참여할 순 없고 참관만 가능했지만,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하버드 병원의 전공의들의 전체 환자 회진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미국 의료 환경의 의료진의 한 일원으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그 과정의 여유로움이었다. 

의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외래진료는 특별히 정해진 점심시간 없이 오후 5시까지 진행됐는데, 8시간 동안 대개는 2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게 되고 많을 때는 3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게 된다. 모든 환자들에게 한국에서 파견 나온 필자를 인사시키고 진료를 참관하는 것에 양해를 구하면서 시작하는 외래진료는 적게는 15분에서 많게는 30분이 넘도록 상담과 진찰이 이루어진다. 전신마취 수술은 시작하기 전에  항상 집도의와 마취과 의사가 함께 수술 대기실의 환자에게 직접 찾아가 함께 환자를 확인하고 수술과 마취과정에 대해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환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최종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이후에 두 의사가 직접 환자를 이송해 수술실로 입장한다. 수술과 수술사이에는 반드시 1시간의 휴식을 둬 마취의사와 집도의가 항상 휴식을 취한 후 다음 수술을 진행하게 되어 있는데, 집도 의사와 마취과 의사 한명 당 하루 2-3건의 수술만이 진행되다 보니 그 과정이 언제나 여유로운 것이었다. 

우리나라 병원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장비와 시설을 가지고 있고, 수술이나 치료의 술기 과정도 이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우리의 1/3도 안 되는 외래 환자와 수술 건수만으로 병원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점이 너무 궁금해 조금 친해진 전공의들과 집도의들에게 그 비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나라마다 다양한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은 그 수가가 가장 높은 국가로 우리의 거의 10배 이상의 비용이 청구되고 그러한 비용이 있으니 이렇게 여유 있는 진료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전문의가 되고 대학병원의 의료진이 돼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항상 환자를 많이 봐야만 병원이 유지되는 저수가 체계를 바탕으로 한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2014년 OECD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의 의료 수가는 OECD 평균의 37%에 불과하다. 즉, 환자 1명을 진료하거나 수술이 이뤄질 때 그 비용이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어 다른 OECD나라의 병원보다 같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을 해야만 병원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량은 OECD 국가 평균의 3배 이상이라고 한다. 인구수에 따라서 환자수가 정해져 있다면, 한국의 의료진은 환자를 돌보는 과정과 질적인 향상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떻게 하면 병원 유지에 필요한 많은 수의 환자들을 병원에 유치할 수 있을 지를 늘 걱정해야 한다. 환자수가 아주 많아서 경영상 흑자가 지속된다면 병원의 시설과 인력 및 진료환경의 관리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언제라도 그 관리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고 이는 곧바로 최근의 이대 목동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 사태와 같은 사고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즉 이러한 사태는 잘 정비된 시스템 하에서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용과 성형 등을 제외한 의학적 비급여항목들을 올해부터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급여화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이른바 ‘문재인 케어’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급여항목에서의 적자를 비급여 항목에서의 수입으로 간신히 버텨온 병의원은 비급여 항목의 수입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발생하게 될 더욱 악화되는 경영상태를 두려워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수가에 의존하는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이러한 보장성 강화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부디,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어 국가 의료시스템의 큰 틀이 변화하는 이번 기회를 보다 여유로운 일선 진료가 가능할 수 있고 항상 일정한 정도 관리가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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