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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계엄군 소총에 대검 장착"…軍 내부문건서 첫 확인

기사승인 2018.05.17  11:50:02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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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주 "시민 향해 칼 겨눈 진상 규명하고 책임 물어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공개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을 끌고 가는 계엄군의 모습. [조광흠 전 조선일보 기자 제공=연합뉴스](연합뉴스 자료사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위를 진압하면서 소총 끝에 대검을 장착해 시민들을 위협한 사실이 군 내부 문건으로도 확인됐다.

광주에서 계엄군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학생들의 손을 뒤로 묶고 전남도청으로 연행하고 있다. 1980.5.18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대검을 휘둘러 시민을 살상한 정황은 그동안 다수의 목격자 증언과 기록을 통해 기정사실로 여겨졌으나, 우리 군은 지금까지 이를 공식 부인해왔다.

무소속 손금주 의원(전남 나주·화순)이 17일 입수한 국방부의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국방부는 1988년 5월, 5·18 당시 대검에 의한 인명 피해가 있었는지 직권 조사했다.

대외비 문건은 당시 직권 조사 직후 작성된 것이다.

이 조사는 '(군인이) 대검으로 여성의 신체를 도려냈다'는 내용의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뤄졌다.

국방부는 조사 결과 해당 소문이 '악성 유언비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대검 착검과 관련해 군 입장에서 비교적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여러 증언을 채택했다.

그중에는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한 군인이 "계엄군의 최초 '위력시위' 당시 대검을 휴대하거나 착검했으나 시민의 항의로 즉시 착검을 해제했다"고 한 증언도 포함됐다.

국방부는 이를 바탕으로 한 대외비 문건에서 1980년 5월 18∼20일 공수부대 10개 대대가 차례로 광주에 출동하면서 소총에 대검을 장착한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결국 '대검으로 여성의 신체를 도려냈다'는 소문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시위 진압 도중 대검을 사용한 적은 있다'는 사실을 군 스스로도 시인한 셈이다.

5·18 당시 민간인 사망자 자료를 보면, 칼 같이 날카로운 물체에 찔린 '자상'이 최고 11명으로, 이는 계엄군이 시위 진압에 대검을 사용한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고 손 의원은 지적했다.

앞서 손 의원은 지난 11일 계엄군의 성범죄 규명을 조사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의 5·18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는 계엄군의 대검 사용에 의한 피해도 별도로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 의원은 "군이 인정하지 않아 증언 등으로만 전해진 착검이 군 내부 문건으로 처음 확인됐다"며 "시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시민을 향해 칼을 겨눈 부분에 대해서도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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