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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칼럼] 선거 치를 수록 그 종착역은 ‘포퓰리즘’

기사승인 2018.06.13  22:30:00

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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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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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 핑계 민주주의 가치 훼손
사회적 불만 토양 대중선동이 특징

위기 직면 민주주의 포퓰리스트 득세

6·13선거도 선심성 장밋빛 공약 일색
전국 광역단체장 후보 약속한 일자리
실업자 116만여명의 두배 훨씬 넘어

 

김병길 주필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여야(與野) 후보들 공약 상당수가 현실성 없는 선심성, 장밋빛 공약(空約)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지역의 교육 수장인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후보들은 진보 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 무상교복, 무상수학여행 같은 공짜 시리즈 확대는 기본이다. 교육감에게는 정교사 증원의 권한이 없는데도 교사나 교사를 보조하는 교육 공무직을 늘리겠다는 약속이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지방선거에서 선출되는 17개 광역단체장과 228개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쥐락펴락하는 지방재정은 연간 250조원이 넘는다. 선거 비용도 1조700억이다.


17개 광역단체장 후보가 선관위에 제출한 ‘5대 공약’을 살펴보면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후보자들은 숫자 늘리기식 일자리 창출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4월 우리나라 실업자 수는 116만여명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숫자를 밝힌 후보들이 만들겠다는 일자리를 모두 합하면 256만개에 달해 실업자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4차 산업 육성이나 일자리 창출은 기업들의 경영 환경 개선이 우선되어야 실현 가능한 공약이 될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200여년간 갈등과 숙의의 바탕 위에 정립됐다. 정당들은 무지개빛 장식으로 국민의 다양한 생각을 담는 그릇이 됐다. 반면 ‘압축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에서는 뜸들이는 과정이 일천했다. 짧은 기간에 거대 양당으로 헤쳐모이는 정치로는 국민의 다양한 생각을 담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정치 혐오와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정치 퇴행이었다.
경제 부문은 좌우 갈등의 전선이 더욱 구체적이다. 경제민주화 대(對) 경제적 자유, 큰 정부 대 작은 정부, 친(親) 노동 대 친 기업, 재벌 개혁 대 노동개혁, 무차별 복지 대 선별적 복지, 부자증세 대 감세로 팽팽하게 맞서 왔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쉼없이 달군 이슈들이다.문제는 정치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 때 그 종착역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점이다. 


표퓰리즘은 사회적 불만을 토양으로 삼아, 엘리트층을 적대시하며 대중 선동을 하는게 특징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수 엘리트가 성(性) 소수자와 불법 이민자 권익 보호에 관심을 쏟아 ‘진짜 미국인의 삶’이 위협당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백인들의 위기감을 부추겨 당선됐다.


포퓰리즘 정당은 사회를 선량한 시민 대(對) 자기 이익만 챙기는 엘리트 기득권층으로 나누고 대중 최우선주의를 내세운다. 또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같이 시민의 목소리를 곧바로 반영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사법부 독립이나 기성의 언론 자유 등은 중시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정치 성향에는 집단적 경험 못지 않게 유권적 요인도 작용한다. 우파는 대개 위험에 예민하고, 좌파는 변화에 적극적인 성향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우파 성향 경제학자들이 경제위기 가능성에 큰 우려를 표명한 것을 우리 정부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글로벌화 된 지금 자본주의는 수시로 위기에 직면한다. 빈부 격차는 세계 모든 나라의 고민거리다. 현재보다 미래가 나을 것이라는 전망은 설자리를 잃었다. 세계화의 결과로 뒤섞여 살게 된 이방인과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들에 대한 분노 지수도 위험 수준이다.


그 결과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게 됐고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권력 분립, 언론 자유, 법치주의 등을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무력화 하는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  ‘반자유적 민주주의’다. 이렇게 등장한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독재자로 치닫기 십상이다.


또 하나는 그런 자유보장 제도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서 국민의 뜻이 무시 당하고 민주주의 소수의 과두제로 전락하는 ‘민주주의 없는 권리보장’ 즉 비민주적 자유주의다.


주류 정치인들은 대중의 불만 원인을 파악하고, 민주주의의 도덕적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 경쟁자를 섬멸해야 할 적(敵)으로 보고 다른 주장은 ‘가짜 뉴스’로 몰고, 민주적 안전 장치를 허무는 권위주의·포퓰리즘 등이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학교에서부터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정책들은 시대가 복잡해진 만큼이나 단순하지 않다. 당연히 즉시 효과를 내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리더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좌우 갈등이 송곳처럼 첨예한 한국사회는 사사건건 갈리고 시시비비다. 정치,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 복지, 노동, 환경, 교육 등 예외가 없다. 한국인이 좌우 성향 진단하는데 미흡해서다. 이유는 북한이라는 변수다. ‘동족이면서 주적’이라는 모순된 존재가 좌우 구분을 어렵게 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틈새로 파고든 포퓰리즘, 앞으로 북한의 변화가 또 어떤 모습의 포퓰리즘을 낳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을 노리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정권을 장악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도 엄연한 민주주의 범주에 든다. 포퓰리스트들은 매사 ‘국민의 뜻을 따르면 된다’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


이는 겉으로는 매우 민주적인 듯 하지만 ‘국민의 뜻’을 절대화 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를 훼손한다.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구세주 같은 정치인의 등장을 열망하는 세태가 포퓰리즘 확산의 온상이 된다. 6·13 선거에서도 겪었듯 선거를 치를 수록 포퓰리즘만 더 키우고 있다.


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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