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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칼럼] 한국 축구대표팀 ‘카잔의 기적은 호상(好喪)’

기사승인 2018.07.11  22:30:00

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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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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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등 이민자의 아들들 맹활약
‘무지개 군단’ 프랑스는 23명 중 17명

경남·북 크기 소국 벨기에도 다인종팀

4강팀 20대 초반 황금세대 대활약
‘흑인의 발’과 세대교체로 월드컵 빅뱅
한국 축구와 보수 정치는 분골쇄신을

 

김병길 주필

아이러니하다. 스포츠 중 가장 격렬하지만 아름다운 동작이 축구에서 자주 발견된다. 정교한 손 대신 발을 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월드컵 축구에서는 ‘육체의 향연’이면서 ‘말의 성찬’도 펼쳐진다. 어느 네티즌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카잔의 기적’ 호상(好喪)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나라별 역사나 문화, 경기 스타일에 따라 별명도 다양하다. 춤 추듯 유연한 개인기의 브라질 ‘삼바축구’.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차 부대로 명성이 높았다. 강하게 압박하며 공격하는 모습이 전차와 닮아서 ‘전차군단’이다. 이탈리아어로 ‘카데나치오’는 빗장 또는 자물통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별명이다. 16세기 지중해와 대서양을 누비며 대국으로 이름을 높인 스페인은 ‘무적함대’다. 하지만 러시아 월드컵에선 ‘삼바 축구’도 ‘전차군단’도 ‘자물통’도 ‘무적함대’도 4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벨기에·프랑스·잉글랜드·크로아티아. 러시아 월드컵에서 살아남은 4개국이다. 월드컵 4강을 모두 유럽이 차지한 것은 12년 만이다. 유럽은 또 2006년 이탈리아, 2010년 스페인, 2014년 독일에 이어 4회 연속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게 됐다.


2018년 4강에 오른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아트 사커의 지휘자’이자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 지네딘 지단, 세네갈 출신 파트리크 비에라 등 다인종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으로 우승했다.


당시 ‘무지개 군단’으로도 불렸던 프랑스는 다양성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테러와 급증하는 이민자들로 인한 실업 문제가 대두되면서 프랑스 내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대표팀에 흑인이 너무 많다는 극우 정치인들의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뜨거운 논란 속에서도 프랑스 대표팀은 역대 어느 팀 못지 않게 다인종 선수들로 구성됐다. 프랑스 대표팀 23명 중 17명이 이민자 가정의 아들이다. 카메룬 출신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19세 샛별 킬리안 음바페를 비롯해 아프리카계가 가장 많다. 포르투갈 출신 아버지를 둔 앙투안 그리에즈만 등 백인 이민자 아들도 많다.


프랑스와 맞붙은 벨기에 역시 대표적인 다인종 팀이다. 주축 스타 로멜루 루카쿠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콩고 혈통이고 마루안 펠라이니는 모로코 출신이다. 인구 1,150만 명에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의 소국이지만 한 나라 안에서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쓰는 벨기에는 지역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였다. 이같은 벨기에에서 축구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사회 통합 도구로 사용됐다. 


유럽에서 극우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프랑스(FIFA랭킹 7위)와 벨기에(3위)는 다인종 선수들로 다시 한번 역대 최고 축구 강국에 도전하고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각각 새로운 황금 세대를 앞세우고 있다. 평균 연령 26.1세로 4강팀 중 가장 젊은 프랑스는 개인기와 조직력이 결합된 팀으로 향후 세계축구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1991~1993년 생이 주축을 이루면서 평균 연령 27.7세인 벨기에는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5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이들은 23세 이하 선수들이 주로 출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4위) 때부터 꾸준히 호흡을 맞춰 왔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프리미어리그 출신 스타들이 즐비했지만, 모래알 같은 조직력 탓에 ‘배부른 돼지’라는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나온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26.1세로 젊어졌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 소국이다. 면적은 한반도 4분의 1에 인구도 416만명에 불과하다. 크로아티아는 1998년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만만찮은 전력을 유지해 왔다.


‘총성 없는 전쟁터’ 러시아 월드컵을 취재한 어느 기자는 유독 ‘붉은 악마’가 보이지 않아 서운했다는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 축구’는 한국 스포츠의 대표상품이었다. 축구를 하는 날이면 동네가 들썩였지만 이젠 추억의 풍경이 됐다는 얘기다. 


대표팀 부진이 수년간 이어진 가운데, 더 좋은 축구를 위한 협회의 ‘뼈를 깎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팬들의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 한국 축구는 ‘카잔의 기적’을 잊어야 한다.


이번 월드컵 관련 뉴스 중 참가국들의 경제 규모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드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명목 GDP(국내 총생산)은 참가국 중 5위였다. 월드컵은 단순히 축구 실력만 겨루는 장이 아니다.


이번 대회 4강 진출 4개국의 공통점은 ‘세대 교체’로 요약된다. 아울러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인종갈등을 녹여 황금세대를 완성한 ‘다인종 팀’들이 닮은 꼴 빅뱅을 일으켰다.


기득권, 보신주의, 기회주의, 무능의 대상으로 몰매를 맞고 표류 중인 우리나라 보수정당은 월드컵 축구를 교훈 삼아과감히 세대교체에 나설 용의가 있는가.


이 모두가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배워야 할 과제들이다. 공통의 경험은 추억이 되게 마련이다. 추억을 공유할 때 하나가 된다.
 


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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