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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의 길목’ 북한이탈 주민의 한가위

기사승인 2018.09.20  19:00:18

고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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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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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14년차 박태봉(73·가명)·김진복(72·가명)씨 부부(오른쪽)와 탈북 2년차 문영찬(61) 씨가 북한의 추석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북정상이 만나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백두산을 함께 올랐다. 이산가족들을 위한 상시연락사무소가 생기는 등 남북한 평화교류 분위기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탈 주민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현재 울산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약 550명. 대부분은 가족이 온전히 남한으로 오지 못해 남한에서의 명절은 즐겁고 행복하기보다 그리움으로 눈물 짓는 때이다.
북한을 이탈해 울산에 살고 있는 탈북 14년차 박태봉(73·가명)·김진복(72·가명)씨 부부와 탈북 2년차 문영찬(61) 씨.

이들은 20일 남북 정상이 만나 민족의 명산, 백두산 천지 앞에서 손을 잡고 나란히 웃는 모습을 보고도 ‘기대반 우려반’이라고 했다.

북녘에 있는 친인척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이 설레지만, 북한체제에서 60년을 살아왔기에 한편으로는 '쇼가 아닐까'하는 의심도 든다는 것.
‘한반도 평화시대’에 대한 기대가 한껏 피어오를 민족 최대의 명절. 울산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태봉·김진복씨 부부와 문영찬씨는 얼마전 추석을 앞두고 열린 울산하나센터 주관 추석차례지내기 행사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는 말로 북한의 추석 이야기를 시작했다.
 
◆차례상, 격식 없이 성의껏 차려

문씨는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는 어느 때보다 엄숙해야 하는데 젊은 탈북자들이 어찌나 시끄러운지 아무리 자유국가지만 도덕성이 그렇게 없어서야 되겠나?”고 말했다.
문씨의 말에 박태봉·김진복 씨 부부도 바로 맞장구를 쳤다.

“북에서는 제사상 앞에서는 무조건 조용히 해야 해. 집안에 어른이 계신 집 애들은 안 그런데, 부모교육을 못 받아 그래. 남한에서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배꼽인사를 가르치는 것은 참 잘하는 거야.”

‘도덕성’, ‘예의범절’로 시작된 북한이야기는 남북한의 추석상차림 비교로 이어졌다.
“정해진 건 없지. 형편 따라 성의껏 올리는 거야, 여기서 바나나를 올리듯이 형식 없이 형편 되는 대로.”

“맞아. 북한 추석음식은 무얼 특별히 해야 한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성심성의껏 준비 한다고 보면 되지.”

 최근 들어 북한은 추석이라 해서 특별한 음식을 정해진 원칙대로 차례 상에 올리진 않는다고 한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어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햇곡식을 올리고 싶지만 농사를 망쳐 수확을 못하는 때가 많기 때문에 이마저도 어려울 때가 많다고.

북쪽의 차례상에 송편, 찰떡, 과일, 해어(물고기), 당과류(사탕, 과자), 문어, 계란 정도를 올리는데, 형편이 그나마 좀 나은 집안은 (상에는 놓지 않고) 후식으로 녹말 국수를 해먹는다고 한다.
이들에게 남한의 추석 상차림에서 가장 눈길이 간 것이 고사리나물이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산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흔한 고사리는 차례상에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쉬는 날 단 하루… 차례 후 근처 성묘만

양강도에서 목수일을 했던 문 씨는 종갓집 장손이다. 그런 까닭에 북에 남겨 둔 형제 셋이 가정 대소사를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 생각만 하면 속이 탄다.

그런데 문 씨의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명절이라고 해서 친인척이 다 모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설과 추석이 남한의 2대 명절이라면 북한의 2대 명절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 탄생일이다. 4대 명절이라 한다면 설과 추석이 포함되는데 설은 이틀 정도, 추석에는 단 하루만 쉰다.

김일성주체사상 아래 명절을 장려하지 않으려는 국가정책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묘소를 찾아가 성묘를 하는 풍습은 지키고 있다. 휴일이 하루뿐이니 너무 멀리 있는 묘소에는 갈 수 없다. 왔다 갔다 하는 교통편도 마땅치 않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걸어서 다녀와 그 다음 날 직장에 출근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문 씨의 말에 의하면 오전에 간단히 차례를 지내고 성묘만 다녀온 후 오후에는 대부분 집에서 쉰다.

가족이 모였는데 외곽으로 나들이라도 안가느냐는 질문에 “하루만 쉬는데 어떻게 멀리 가? 가려면 걸어 가야하는데, 하루 안에 할 수 있는 것만 해야지”라고 답했다.

박태봉 씨도 “남한에서는 고조, 증조, 부모님 묘가 다함께 모여 있고, 며칠 전부터 친척들이 모여서 벌초를 하잖아. 북한에는 부모님 묘만 가까운데 모셔.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조상을 받드는 풍습이 많이 사라졌지”라며 거들었다.

결국 추석만 되면 기차표와 버스표가 매진이 되고, 고속도로는 꽉꽉 막히는 우리와 달리 북한에서는 ‘민족 대이동'이 없다는 것이다.

또 북한에는 추석 오락회(장구를 치는 등 민속놀이 공연)가 없고 그나마 설날에는 조금 남아 있다고 한다.
지난 16일 울산하나센터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추석차례지내기 행사에서 박태봉씨가 북녘에 있는 조상들을 기리며 차례를 지내고 있다.

◆“지방 올려두고 북쪽 바라보며 절 할 터”

박태봉·김진복씨 부부는 함경북도에 살다가 남한으로 온 지 14년차다.
명절 때면 이북5도위원회와 울산하나센터의 차례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한다.
행사 때 이 부부의 눈길을 끈 것은 상에 오른 한자로 된 지방. 한글로 지방을 쓰는 북한과는 사뭇 달랐다.

북에서는 초상이 났을 때 등 꼭 한자로 된 지방이 필요할 때만 마을에 한자를 아는 사람을 찾아가 써달라고 요청을 한다고 한다.

지방보다 망자의 사진을 상에 올리는 것이 익숙했던 문 씨는 이 얘기를 듣더니 “이번 추석 상에는 한글로 된 지방이라도 써서 북쪽을 바라보며 부모님께 절을 하려 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북에서 전기 설비 관련 일을 했던 박 씨는 남한에 와서 위암 발병, 공사현장 사고, 오토바이 사고 등 연이은 어려움을 겪었다.

탈북 초까지만 해도 아담하지만 다부지게 일을 잘하는 박 씨를 공사현장에서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일거리가 거의 없다고 한다.

문 씨 또한 기초수급비만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일당이 많은 공사현장에 나가고 싶지만 건강이 허락지 않고, 다른 일을 하자니 자격증을 딸 엄두가 안 난다. 18개월 된 외손자의 재롱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래도 남한에선 일을 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준다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북한에선 한 달 일해도 쌀 몇 킬로도 안 줘. 나라에 손 내밀지 않으면 애국자다라는 말을 할 정도야.”

남북정상회담에 오간 얘기들이 잘 실현돼 남북한이 활발히 교류하면서 통일에까지 이르면 얼마나 좋겠냐는 기자의 말에 이들은 “미국도 미국이지만 북한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들에게 비누, 삼푸 등 생활용품이 담긴 작은 추석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반갑게 받아들자마자 “현수막 앞에서 선물 들고 있는 장면 사진 안 찍어요?”라고 물었다. 한국생활 14년차 그리고 2년차 모두 ‘보여주기 기부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15만여 명의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을 소중한 형제, 다정한 친구, 따뜻한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글․사진=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취재협조=울산하나센터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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