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온몸 아파도 하루 겨우 쉬었는데…파견 관계사 모두 모르쇠"
마지막 월급은 1년째 체불

(노컷뉴스 자료사진)

내비게이션 공장에서 일한 지 약 두 달 만에 20대 여성이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 1년이 지났지만 마지막 월급은 아직도 지급되지 않았다. 파견근로자였던 그를 원청인 갑 업체와 실사용자인 을 업체, 파견업체인 병 업체 모두 외면하면서다. 

◇ 입사 두 달 만에 공장에서 숨진 20대 노동자 

지난해 12월 10일 새벽 1시 충북 충주시의 유명 내비게이션의 부품 제조 공장인 을 업체에서 일하던 김모(당시 28세)씨가 쓰러졌다. 

자정 무렵 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출혈을 일으킨 김씨는 30여 분 만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고 결국 이틀 뒤 숨을 거뒀다. 

공장에 들어가 부품 조립, 불량 회로판 선별 등의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이었다.

쌍둥이 동생인 유족 김모씨는 "누나가 야간 근무를 하면서 부쩍 힘들어했는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열이 올라와도 겨우 하루 쉰 정도였다"며 "다음 순서의 근로자에겐 '이것밖에 못 해놔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도 써뒀더라"고 말했다.

이어 "이 지역에 정착해서 열심히 살아보자고 가구도 새로 사놨는데, 이걸 조립조차 못 하고 먼저 떠났다"며 울먹였다.

김씨의 메신저에선 남자친구 등 지인들에게 십 수도를 오가는 작업장 내 온도 차, 동료 근로자가 업무 실적 문제로 해고된 상황 등에 대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이 발견됐다. 

김씨는 지난 8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고 유족급여와 장례지원비를 받았다.

하지만 김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일했던 지난해 11월과 12월 사이 마지막 1달 반 동안의 급여는 1년이 다 돼가도록 여전히 지급되지 않은 상태다. 

'파견 근로자'란 김씨의 신분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 "관계 회사가 3곳이나 되는데, 모두가 책임 미루더라" 

김씨는 사실상 을 공장의 근로자였다. 

최한솔 노무사는 "을 공장 관계자가 김씨의 출‧퇴근과 야근, 휴일 근무 등을 관리했던 것은 물론, 매일 조회를 열어 업무 내용을 전달했다"며 "휴가와 병가는 물론, 근태에 따른 해고 역시 사실상 을 업체 측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김씨와 근로계약서를 쓴 건 서비스업 등으로 사업자등록을 해둔 병 업체였다.

파견법상 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서,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공장에 근로자를 보낸 것이다.

병 업체 사장은 "그렇게 하는 게 틀린 건 맞다"고 말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에 따르면, 이 업체 사장은 김씨를 비롯한 여러 명의 직원에 대해 임금을 체불한 혐의로 지난 10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그러는 사이 김씨의 마지막 급여는 을과 병은 물론, 이 같은 제조 공정의 정점에 있는 제조사 갑사까지 모두에게서 외면받았다. 

갑사는 사건 발생 초기 유족 김씨를 챙기면서 "산재는 인정받기 힘들 테니 신청하지 말라"고 수차례 당부했던 점에 대해선 "잘 모르고 그렇게 말씀드린 데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고에 우리 측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을 업체 역시 "김씨의 사고와 관련된 것은 병 업체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고, 병 업체 측은 1년이 다 돼가는 현시점에서야 "이번 달 안으로는 급여를 꼭 지급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족 김씨는 "관련된 회사가 세 곳이나 되는데, 아무도 책임을 안 지려 하더라"며 "특히, 누나가 실제로 일을 했던 을 업체는 산재 신청 과정 등에서도 아무런 도움도, 반응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무엇보다 '사람이 죽었는데' 진정성 있는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최 노무사는 "당장 해고당할 수 있는 파견 근로자의 입장에선 연장 근무나 예기치 않은 휴일 근무 등에 관한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다"며 "위험과 책임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고용구조를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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