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동구 방어진항 일대에 통영 등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많은 멸치잡이 어선이 정박해 있다. 임경훈 기자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심더.”
경남 통영 멸치잡이 배들이 울산 동구 방어진 앞바다에 떴다. 조선업 불황 여파로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동구 일대는 뱃사람들로 북적이며 간만에 ‘생기’가 돌고, 빈 가게를 지키던 상인들은 “우리 ‘손님’ 왔다”며 반가워하고 있다.
6일 오후 동구 방어진항 일대. 지난밤 뱃일을 나갔다가 그물을 털고 작업을 마무리한 외지 멸치잡이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식당들에는 한 끼를 해결하려는 선원들로 꽉 찼고, 구멍가게에는 간식거리를 챙기는 손길이 분주했다. 인근 원룸이나 모텔에서 잠을 자는 선원들 탓에 동네 골목마다 사람 발길이 미치는 모습이었다.
한 돼지국밥집 주인은 “동구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사람들도 다 나가고, 단골도 끊겨서 지난여름에는 국밥 스물 그릇도 못 팔았다”며 “멀리서라도 멸치배가 동구로 들어오니, 손님들이 급격히 늘어나서 식당 매출도 오르고 요즘은 살맛이 난다”고 말했다.
점심때가 지나자 ‘오양호’ 대형버스를 탄 20여명의 사람들이 방어진공동어시장에 우르르 내렸다. 모두 멸치잡이 배를 타는 선원들인데, 작업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이날 만난 바루스(인도네시아·28) 씨는 멸치 조업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울산에 일주일째 머물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선원들은 방어진은 물론, 명덕, 전하동 일대까지 나가서 일과를 보내고 있다고 있었다.
현재 동구 방어진항에 있는 멸치잡이 배는 대략 200여척. 통영 권현망수협 소속인 이들은 보름 전부터 통영, 거제 등 남해안을 거쳐 동구 방어진까지 왔다. 멸치잡이는 기선권현망(촘촘한 그물망) 조업으로 이뤄지는데, 어탐선(10~20t, 1~2척), 본선(25~40t, 2척), 가공선(60~100t, 1~2척), 운반선 등 통상 5~7척이 1개 선단을 이루고 있다. 1척에는 30여명의 선원이 포함돼 있어, 어림잡아 6,000여명의 인원이 방어진과 남해 등지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동구 방어진항을 찾은 건 여러 이유가 있다. 권현망수협에 따르면 현재 울산지역에는 권현망 조업 허가권자가 없어, 허가권을 갖고 있는 외지 어선만 멸치 조업이 가능하다. 이들 멸치잡이 배는 지난 수십 년 전부터 부산·울산·경남 어업허가권을 갖고 제1조업구역(동·남해안 일대)에서 활동 중인데, 울산 앞바다(동구 방어진항~북구 정자항) 또한 해당 구역에 포함돼 있어 어업이 가능하다.
통영 권현망수협 사무장 최락춘 씨는 “부울경 어업허가권을 가진 어선들이 남해안 일대에서 멸치를 잡다가 물량이 부족하면, 가을부터 다음해 초봄에 울산까지 올라온다. 이는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됐지만, 멸치 어업허가권 및 조업구역은 승격전과 똑같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울산 앞바다에서 잡힌 멸치는 다시 거제, 통영, 마산 등 남해안 본거지로 옮겨져 전국으로 유통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때마다 동구를 찾는 손님들로 막상 지역어민들은 이들과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어진항의 선박 접안시설이 협소해서 기존 동구지역 어민들 배와 외지 멸치잡이 배가 서로 때아닌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는 거다. 멸치잡이 배는 금어기인 4월이 되기 전, 내년 3월31일까지 이곳에 머문다.
동구의 한 어민은 “외지에서 배가 들어오면 식당이나 숙박업소나 좋지, 우리 어민들은 조업하는데 있어 불편함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반해, 외지에서 온 한 선주는 “지역 배들에 밀려서 멸치잡이 배의 정박지가 없으니 하는 수없이 바지선 앵커를 두고, 주변에 계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매년마다 조업을 위해 찾아오는 동구인데, 앞으로 지방 사업주들 또는 어민들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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