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지역 여경 ‘최초’ 로 파출소장이 된 박옥남 경감.  
 
   
 
  ▲ 두동파출소장 박옥남 경감이 노인정을 방문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후배 여경들 모두 충분히 뛰어나고 잘 할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울산지역 경찰들의 ‘왕언니’ 박옥남(59) 경감이 지난달 울산지역 여경 ‘최초’ 파출소장 타이틀을 달았다. 울주군 두동파출소를 책임지고 있는 그의 ‘경찰인생’은 늘 도전이었다.

40년 전, 순경으로 경찰에 첫발을 내디딘 박 경감의 첫 부서는 경리계였다. 200명이 넘는 직원들 중에서 여경은 단연 박 경감 혼자였다. 당시 남성중심 계급문화가 강했던 터라, 초임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때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던 시대도 아니었는데, 남성 전유물로 여기던 경찰이 됐으니 힘든 점이 많았죠. 특히 여자 화장실조차 없던 시절이라, 남자 화장실 가장 안쪽에 있는 칸에 ‘여자’라는 종이 한 장 붙여두고 사용했어요.”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찰이 되고 싶어도 여경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 근무지도 민원실이었어요. 당시에는 여경의 보직이 민원실이나 경리계에만 나던 시절이라, 현장근무가 힘들었어요. 싸이카를 타고 범인 검거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을 동경 했죠. 한번은 현장에 있는 경찰들에게 밥도 차려준 적 있었는데,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참 서러운 점이 많았죠”

‘임신하면 일을 그만둬야한다’라는 인식이 만연했던 시절. 두 아이 엄마가 된 박 경감 역시 피해갈 수 없는 고비였다. 그럼에도 경찰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는 묵묵히 공직생활을 이어갔다.

“출산휴가를 사용했던 선례가 전혀 없어서 눈치도 많이 보였어요. 휴가도 1개월 밖에 쓸 수 없어서 출산 후 바로 복귀한 셈이죠. 정말 뼛속에 바람이 들어간다는 기분을 느낄 만큼 힘들어서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경찰에 대한 꿈을 쉽게 접을 수 없었어요. 너무 바래왔던 일이고, 그만큼 보람도 많이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동료들이 큰 힘이 되어 줬고, 용기를 가지고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여경을 택했기 때문에 박 경감에게는 항상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은 늘 그의 몫이었다.

“어떤 업무를 맡든 여경은 항상 ‘최초’였어요. 내가 한번 잘못해 버리면 여경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늘 부담감을 갖고 있었죠. 후배들에게 폐가 되면 안 된다는 부담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워낙 뛰어나고 자랑스러운 후배 여경들이 많아서 걱정도 내려놨습니다.”

여경이라서 힘든 점이 많았지만, 여경으로서 해야할 일도 많았다. 여성, 청소년, 노인 등 사회 사각지대에 놓인 자들에게 박 경감은 희망이 됐다.

“117학교여성폭력긴급지원센터에서 근무할 당시, 한번은 한 여학생이 연락 온 적이 있어요. ‘왕따를 당하고 있어 너무 힘들다’며 고민을 털어 놨는데, 먼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 만났을 때 함께 밥을 먹었는데, 갑자기 이 학생이 울더라고요. 누군가 마주고보 밥을 먹은 적이 처음이라며 고맙다고 하는데 저도 울컥했어요. 그때부터 이 학생과 연락하며 딸처럼 지냈어요.”

“이 학생이 학교도 포기한 상태라 조심스럽게 ‘검정고시 준비를 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는데, 너무 두려워하더라고요. 그래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며 도전을 응원했죠. 몇달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박 경감은 울산 여경 중에서는 나이가 가장 많다보니, ‘왕언니’로서 역할도 톡톡히 했다.

“출산을 앞둔 후배 여경들이 찾아와 고민을 많이 털어놨어요. 그때마다 제 경험을 이야기 해주며 용기를 줬어요. 특히 출산휴가는 제가 선례가 됐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많은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성 중심적이었던 경찰문화도 바뀌었다. 그 과정 모두 겪었던 박 경감은 요즘 느끼는 바가 많다.

“가끔은 ‘지금 경찰이 됐더라면’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제 젊은 시절에는 여경으로서 하지 못한 일이 많았어요. 최근에는 바뀐 공직문화에 ‘격세지감’을 느껴요.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이기도 하죠. 후배 여경들이 동등하게 일 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끝으로 두동·두서를 책임지는 두동 파출소 수장으로서 박 경감은 남은 공직생활을 주민들을 위해 ‘발로 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후배 여경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내년에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현장으로 나오기까지 고민이 참 많았어요. 그럼에도 파출소장을 자처했던 이유는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공직을 마무리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경찰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주민들에게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후배 여경들에게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미 후배 여경들이 너무 잘 해주고 있어서 너무 뿌듯해요. 하지만 아직도 여경 후배 중에 충분한 역량을 갖췄는데도 망설이는 친구들이 있어요. 이들에게 꼭 적극적으로 도전하라고 전하고 싶어요. 이미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