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국내 최초 참치 통조림 ‘동원참치’는 1982년 출시됐다. 지금까지 62억 캔이 팔려 한 줄로 늘어 놓으면 지구 1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양이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동원그룹은 국내 최대 수산 종합기업이며, 43개 계열사 매출이 연간 7조원이 넘는다.

동원그룹은 1969년 4월 명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3명과 원양어선 1척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신규 어장 개척과 첨단 어법 등을 도입하며 1, 2차 오일 쇼크 등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1934년 전남 강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재철. 고3때 선생님의 한마디에 인생 항로를 바꿨다. “나 같으면 바다로 가겠다”, “고작 뱃놈이 되겠다는 것이냐”는 아버지의 호통을 뒤로하고 부산 수산대(현 부경대)에 입학했다. 수많은 청춘이 배를 타고 영원히 바다로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가 출항한다는 소식에 몸이 달았다.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고 수산대 졸업생 김재철은 선장이 됐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항해가 시작됐다. 일본 배를 빌려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그의 리더십은 바다에서 이뤄졌다. 폭풍이 몰아칠 때 선장이 자신감을 보이면 선원들은 지시를 잘 따랐다. 선장이 불안해 보이면 동요가 커진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김재철 회장은 2019년 4월16일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장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룹 창업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한국의 오너 경영 풍토에선 드문 일이다. 84세에도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그의 은퇴 이유는 ‘스피드 경영’이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시대이니 젊은이들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평생 남보다 몇 걸음 더 빨리 달려온 김 회장이 스피드를 은퇴 이유로 꼽은 것은 겸양으로 보이지만 경영의 본질을 짚은 것이다. 먼저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창업1세대가 거의 물러난 지금 한국사회의 역동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한 걸음 더 나가려면 더 빨라져야 한다. ‘50년 선장’의 아름다운 퇴장과 함께 제2, 제3의 김재철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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