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축구대표팀, 폴란드서 은메달 걸고 금의환향
감독-선수, 서로가 ‘상대방 덕분’이라며 영광 돌려
문득 폴란드영화 속  6·25 전쟁고아들 아픔 떠올라
‘당신 덕분’이란 우리 아이들에서 한반도 희망 보여

 

조현호 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사

폴란드로 갔던 선수들이 돌아왔다. 경기 진행 중 틈틈이 형들 덕분이라느니, 감독님 덕분이라느니 하는 인터뷰를 들었다. 어린 선수들과 감독이 배려에 참 익숙하다 싶었다. 듣기 좋았다. 떠날 때는 큰 기대가 없었는데 대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은메달까지 걸고 돌아왔다. 게다가 ‘막내형’은 골든볼 트로피까지 들고 왔다. 

귀국해서 가진 기자회견은 더 유쾌하다. 감독은 ‘임금이 있어서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있어야 임금이 있다’며 선수들 탓으로 돌리고, 재기발랄한 한 선수는 감독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감독 탓으로 돌린다. 생각할수록 기분 좋아지는 ‘내 탓, 네 탓’ 공방이다. 부정적인 ‘네 탓’에 찌든 우리들에게 서로 ‘네 덕분’이라고 상대방을 치켜세움은 무더위 끝 소나기 마냥 시원하다. 원팀으로 똘똘 뭉친 선수단 모두가 골든볼 감이로다. 

대회 기간 어린 선수들이 만들어 내는 영화같은 경기를 보면서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한 편 떠올렸다. 작년 말 개봉했던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영화는 6·25 전쟁 기간 발생한 고아들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 고아들 또래의 자녀를 둔 영화감독은 탈북소녀 송이와 함께 폴란드를 방문한다. 그들은 이제 90세 전후가 된 프와코비체 보육원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기차에서 내렸을 옛 역 자리와 보육원 터도 찾아 나선다. 

대체 6·25 전쟁고아들과 폴란드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북한 점령지에 있던 전쟁고아 1,200여명이 러시아로 보내졌다. 그리고 2년 뒤 그들은 영양이 결핍된 채 폴란드 남쪽 소규모 도시 프와코비체 양육원으로 재이송됐다. 이들은 북한에 송환된 1959년까지 6년간 양육원 관계자들을 제2의 부모로 여기고 전쟁의 상처를 이겨낸다. 브로츠와프의 한 묘지에는 그들 중 1955년 희귀병으로 사망해 돌아가지 못한 딱 한 명의 아이 김귀덕의 묘가 남아 있다. 

영화는 세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보인다. 프와코비체 양육원으로 보내진 전쟁고아들 중에는 북쪽뿐 아니라 남쪽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1951년 전선이 위아래로 이동하면서 남쪽에 있던 아이들과 북쪽에 있던 아이들이 섞이게 됐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점령지에 있었던 아이들이 함께 보내진 것이다. 당시 의료진이 아이들의 폐에서 발견된 기생충을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정확히 남북한 양쪽으로 나눠졌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돌아간 곳은 한쪽뿐이라는 사실은 전쟁상황이라는 특수성만으로는 아쉬움이 있다. 

당시 보육원 관계자들이 아이들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흥미롭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일이면 그저 그런 옛이야기로 넘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 외국인들이 오래 전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그런 모습이 감독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다큐영화를 만들게 한 계기가 됐을지 모르겠다. 유제프 보로비에츠 당시 양육원장이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를 아저씨, 아주머니, 원장, 교사 등으로 부르게 하지 말자고 했어요. 대신 ‘아빠, 엄마’ 이렇게요.”라며 인터뷰하던 장면은 국적을 떠난 무한한 인류애, 생명사랑의 집약판이다. 폴란드도 2차 세계대전 중 6년간 외침에 시달렸고 그 유명한 제노사이드(genocide)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그 나라 땅에 있지 않던가. 동병상련의 아픔을 알기에 아이들을 더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나 싶었다. 

탈북소녀 송이의 말도 잊히지 않는다. 북쪽에 있을 때는 감자 두 알이 있으면 하나는 남쪽의 친구에게 주려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남쪽에 와 보니 너무 잘 살고 있더란다. 그런데, 감자가 아닌 빵을 두 개 들고 있어도 혼자 다 먹거나 남으면 버리더란다. 내 것이니까, 내 돈으로 산 것이니까 친구와 나눠먹기 보다 버리겠다는 셈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들리지만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 버리고, 한쪽에서는 식량난으로 굶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송이의 걱정과 달리 우리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내가 잘 된 것은 ‘당신 덕분’이라고 믿는 든든한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곧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누었던 6·25전쟁 69주년을 맞는다. 어렵게 찾아온 한반도의 봄, 평화의 바람이 계속 훈풍을 타고 진전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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