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사망한 채로 발견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의 사고가 ‘자살’이 아닌 ‘업무상 재해’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을 두고 “자살 누명을 쓴 하청노동자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환영하며 나섰다.
서울고법 행정5부(부장판사 배광국)는 지난 2014년 사망한 고(故) 정범식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의 배우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해당사건은 2014년 4월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에서 샌딩작업 중이던 정씨가 목이 에어호스에 감겨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건을 두고 정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정씨의 사망원인을 문제삼으면서 경찰이 다시 내사에 착수했으나 결론은 같았다.
정씨의 배우자인 A씨가 2015년 5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지급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경찰 수사결과를 근거로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2017년 12월 1심 판결에서 “근로복지공단의 부지급 처분이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2015구합82563)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은 “정씨가 자신의 샌딩기 리모컨을 수리하려다 샌딩기에서 분사된 그리트가 눈에 들어가자 사다리를 통해 지상으로 내려가려다 호스에 목이 감겨 사망한 것으로 판단돼, 이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정씨의 머리에서 발견된 상처와 허벅지 부위의 상처는 시야 확보가 되지 않은 정씨가 움직이려다 부딪힌 걸로 추정했으며, 여러 정황상 별다른 자살 동기가 없는 점 등을 인정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와 재해 사이의 발생원인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해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해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재해라고 봤다.
이번 판결을 두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비정규직 노조)는 논평을 내고 “자살로 둔갑한 억울한 하청노동자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환영한다”며 “고인이 명예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유족이 더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법적 다툼이 종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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