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등장하자 미술은 경쟁이 될 수 없었다. 사진 보급이 본격화 되면서 미술은 더욱 주관적 느낌의 영역으로 돌아섰다. 화가 들은 온갖 기기묘묘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작가의 ‘개념’만으로도 작품성을 인정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서양현대미술의 한복판에서 최고 수준에 오른 작가 중 한 사람이 백남준이다. 백남준이 TV브라운관을 소재로 현대미술을 펼쳐보이자 ‘이게 무슨 예술이냐’라며 야유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백남준의 예술은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6월 25일 조수가 그린 그림에 가필(加筆)해 자기이름으로 판매한 혐의(사기)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조씨의 그림에 대한 선호도와 관계없이 한국 미술계의 ‘역사적 판례’가 될 것 같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 했을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해 판단한 최초의 사례다. “위작·저작권 다툼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관하여 사법 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조씨의 작품을 대작이 가능한 ‘개념 미술’로 보느냐, 작가의 묘사력이 중심인 ‘사실주의 작품’으로 보느냐가 관건인데 법원이 판단하기 보다 예술계의 양식에 맡겨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이번 판결이 적절했다는 평가도 들린다. 복잡한 미술 사조의 변화를 재판장이 모두 꿰고 있을수도 없겠지만, 어떤 문제만 생기면 정답을 찾아 사법부로 달려가는 풍조에 대한 경계로도 읽힌다.

미술 평론계에선 현대 미술은 조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조씨가 그걸 감췄다는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법적으론 무죄가 될 수 있으나 도덕적으로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이번 판결로 ‘대작(代作)이 무조건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를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도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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