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47)

                                                                                                                                                        그림 : 배호

 

고구려 왕세자는 군사 한 명을 불러내 나무기둥에 손바닥을 펼쳐 대놓게 했다.

“자. 준비가 되었으면 저기 기둥에 대놓고 있는 손가락 사이에 화살을 쏘아보게.”

석도가 기둥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니 어림짐작으로 육십 보쯤 되어보였다. 거리에 바람까지 계산을 마친 석도는 거침없이 화살을 날렸다.

쉬웅,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은 탁, 소리를 내며 기둥에 박혔다. 손바닥을 대고 있는 군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탁 소리가 난 다음 눈을 떠보니 화살이 정확하게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박혀 있었다.

네 발의 화살이 모두 손가락 사이에 정확하게 박히자 고구려의 왕세자가 제일 먼저 박수를 쳤다. 그러자 둘러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과연 신라엔 명궁이 많다더니 빈말이 아니었구려. 아직 나이도 어린 청년이 이 정도니 어련하겠소. 그런데 신라의 왕세자께서 이 먼 변방까지 어인일로 오시었소?”

그제야 고구려의 왕세자는 제대로 된 손님대접에 들어갔다. 신라의 왕세자는 거짓문서에 적었던 대로 신라와 고구려가 함께 힘을 합쳐 백제의 사비성을 바로 치자고 했다. 지금 백제의 대군이 대야성으로 몰려가 있으니 사비성은 오히려 텅텅 비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왕세자도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중요한 일이라면 국왕과 국왕사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사항임을 설명했다. 왕세자들끼리 합의해서 백제를 치는 큰일을 도모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오 년 전까지 큰 전쟁을 치렀던 나라 사이에 연합을 하려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각자 왕성으로 사람을 보내 국왕의 승인을 받아오도록 합시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꺼이 군사를 몰고 사비성으로 갈 것이오.”

신라의 왕세자로서는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백제군이 언제 신라를 집어삼키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 시가 급한데 왕궁까지 다녀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5년전 고구려군을 패퇴시켰던
              예언자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신라에 그런 뛰어난 예언자가 있는 한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있소. 신라에 석가치라는 고승이 있다는데 우리에게 모셔다 주실 수 있겠소?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재량으로도 귀국에 큰 힘이 되어 드릴 수가 있겠소. 그러고 보니 아까 석도라는 이름이 석가치스님 때문에 귀에 익었던 것 같소이다.”

서라벌의 왕세자는 지용국사의 의견을 물었다. 지용국사가 앞에 나서 자세한 설명을 했다.

“석가치는 속가로 돌아간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환속하기 전에는 소승과 함께 효신국사님 밑에서 상좌로 있었습니다. 벌써 18년이나 되었습니다. 왜 그 사람을 찾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람은 이미 폐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자가 환속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국사가 되었을까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국사님께서는 아주 겸손하시군요.”

“과분한 말씀입니다.”

고구려의 왕세자가 석가치라는 인물을 자기에게 데려다 달라는 조건을 덧붙인 의도를 신라 사람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오 년 전에 고구려군이 가잠성을 무너뜨리고 큰 재를 넘어 신라의 영토로 밀려 들었을 때 석가치라는 사람의 예언으로 고구려군이 패퇴했던 것이다. 고구려 사람으로서는 예언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신라 땅에 그런 뛰어난 예언자가 있는 한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 예언자를 제거하든가,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꼼수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잠성으로 돌아 온 왕세자는 즉각 서라벌로 전갈을 보냈다. 협상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니 국왕의 승인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석가치를 함께 보내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국원성으로 다시 전갈을 보냈다. 앞으로 양국의 군사가 함께 사비성을 치러 가려면 기본적인 군사연습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이 기회에 양국 군사들의 능력도 시험할 겸 무료함도 달래기에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원성에서 즉각 대답이 왔다. 양국군사들 중에 궁수들을 뽑아 궁술대회를 열자는 것이었다. 왕세자는 뜻한 대로 일이 풀려나가자 혼자 쾌재를 불렀다. 궁술 대회는 정오가 지나서 바로 진행되었다. <계속>

 

김태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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