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관술선생의 1940년대 말 투옥 당시 신상표  
 
   
 
  ▲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에 있는 이관술 생가 최근모습. 이 집은 이미 매매됐다.  
 
   
 
  ▲ 이관술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씨와 남동생 손기봉씨가 "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은 위조됐다"는 내용의 논문을 받아 들고 있다.  
 
   
 
  ▲ 보수단체의 반대로 원래 자리에서 생가 인근으로 옮긴 이관술유적비.  
 

울산범서출신 사회주의계열 항일운동가 학암 이관술선생(1905-1950)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족과 기념사업회는 “약산 김원봉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유공자 서훈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며 “역사적 재조명을 꾸준히 진행해 서훈 신청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제75주년 광복절(8.15)을 맞아 351명을 독립유공자로 새롭게 서훈, 포상한다.

학암 이관술선생은 13일 발표된 351명의 독립유공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1902년 울산 입암에서 출생한 이관술선생은 서울 중동고와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1930~40년대 항일운동을 했다. 해방 직후 잡지 <선구>의 최초 정치여론조사(1945년12월)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가장 양심적이고 역량 있는 정치지도자” 5위에 선정될 만큼 현대사 속 주요 인물이었다. 하지만 미군정이 주도해 조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조선정판사위폐사건’으로 수감돼 대전형무소에 투옥됐고, 한국전쟁 발발직후 처형됐다.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은 1945년 10월 20일부터 6회에 걸쳐 조선정판사 사장 박낙종 등 조선공산당원 7명이 위조지폐를 발행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에서 이관술선생이 위조지폐를 전달받아 공산당활동비로 썼다는 것. 유가족과 일부 학자들은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을 미군정이 주도해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관술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60·전 경주 안강여고 교사)씨는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이 이번 미서훈의 이유가 됐다고 보고 있다. 손 씨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해서는 이 사건을 재심 청구해 조작된 것을 확인시켜야하는데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고 말했다.

손 씨의 모친이자, 이관술선생의 막내딸 이경환(86)씨는 앞서 2012년 “학암 선생이 국가 공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2015년 3월 27일 대법원은 승소 확정 판결했다.

이 씨는 현재 치매증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며 이관술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씨가 기념사업회와 함께 학암선생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손씨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지정은커녕 빨갱이로 낙인 찍혀 후손들까지 피해를 입어왔다”며 “최근 국가 상대 손배소에서 승소하면서 진실이 조금씩 밝혀졌지만 독립유공자로 서훈되는 것이 외할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배성동 공동대표는 “해방 후 이념대립에 희생된 비운의 항일투쟁가 이관술의 명예회복이 꼭 필요하다”며 “범서읍 입암리 생가와 원래 자리에서 쫓겨난 비석도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을 도와 독립운동자 유공자 신청을 다시 진행하고, 독립운동 마을조사, 유적비 복원, 기념관 건립 등의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재인 정부 들어 이념대립을 떠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유공자 서훈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5월에는 민중당 김종훈 국회의원(울산 동구) 주관으로 ‘항일운동가 이관술 국회 세미나’가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주최, 민족문제연구소,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후원으로 세미나가 열려 선생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한편 울주군은 학암 이관술선생을 비롯해 언양의 인내천바위, 청사대(靑史臺) 등 소외된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조사·분석하는 ‘울주군 독립운동사 조사를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용역 결과를 검토 후 독립운동 기념 전시장 건립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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