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민 울산대학교 산업경영공학부 교수  
 

플랫폼 자본주의라 할 때 ‘플랫폼’은 스마트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 사람들이 일감을 주거나, 구하거나, 업무 내용을 지시하거나 서비스 만족도를 평가하기도 하여, 앱이 마치 기차역의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달, 대리운전, 가사, 아이티(IT) 프리랜서 등에서 시작한 플랫폼 노동이 경제의 여러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미 플랫폼 노동자가 50만 명 (2019년 한국고용정보원)을 넘었다.



플랫폼 노동은 저비용으로 자기 착취를 유도하는 자본의 새로운 수탈 방식이다. 전 세계 수 백만 명에 이르는 무산계급은 이런 임시 일자리라도 구하기 위해 숨 가쁘게 경쟁하면서 유산 시민인 부르주아지와 정규직을 위한 ‘맞춤형 심부름’ 노동을 하고 있다. 늘 일을 배당받기 위해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하는 이들을 독립계약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유희에 가깝다. 단순하게 보면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를 연결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디지털 플랫폼 업체가 하는 일로 보이지만, 실은 플랫폼 자본은 미래를 더 큰 불평등, 갈등,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택배를 예로 들면, 2018년 국내 택배 물량은 25억4278만 개로 2017년 23억1946만 개 대비 9.6% 늘었다. 올해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택배 물량은 20~30%가 늘었다고 한다. 택배 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단가 경쟁력을 확보한 일부 대형 택배회사 위주로 재편되어 CJ대한통운(48%), 한진(12~13%),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대형 3사가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70~75%에 달한다. 하지만 택배 단가는 과당 경쟁으로 하락세가 지속되었다. 상자당 단가는 2018년 2,229원으로 2012년 2,506원 대비 11%나 떨어졌다.



이러한 플랫폼 자본의 독과점화와 과당경쟁의 여파로 택배 노동자가 받는 건당 배달 단가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900원 안팎이며, “택배 시장의 낮은 수수료로 인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원청회사들은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대리점의 중간착취로 택배 노동자의 삶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최근 3년간 일을 하다 사망한 18~24세 청년의 44%(72명 중 32명)가 오토바이 배달 중 사망했다. ‘배달’은 청년 산재 사망 원인 중 1위였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에이비(AB: Assembly Bill)5’ 법안이 새해 1일 발효됐다. AB5 법은 기업이 노무를 제공받을 때 이른바 ‘ABC 테스트’라는 것을 통과해야만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계약자로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일하는 사람이 a) 회사의 지휘·통제로부터 자유롭고, b) 그 회사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이외의 업무를 해야 하며 c)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해당 사업에서 독립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계약자로 분류된 이들이 노동자가 되면 실업보험, 의료보조금, 유급 육아휴직, 초과근무수당, 시간당 최소 12달러 최저임금 보장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도 2019년 택배기사들의 노동조합 합법성을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판단에 이어 대리운전 기사들에 대해 부산지법 동부지원이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고용노동부도 개인 사업자로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일해온 배달 앱 `요기요` 배달원을 근로자로 인정했다. 보수를 기본급·고정급으로 지급하고, 상당한` 정도의 업무 지시·감독을 한다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플랫폼 업체에 처음 적용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택배 지부 소속 CJ대한통운, 한진, 로젠과 전국 집배원노조, 공항 항만 운송본부 쿠팡 지부, 국제 특별수송(DHL, Fedex, UPS)지부, 기업 택배(성화, 동진) 지부, 라이더유니온 등 택배배달노동자 2800여 명이 함께 하는 희망더하기는 “택배·배달 안전운임 보장, 초과근무수당, 유급휴일 보장하는 표준계약서 의무 사용, 노동자성과 원청·플랫폼 사의 사용자성 인정하는 법 개정, 산재보험 의무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급변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노동조합을 강하게 만드는 일 외에도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기술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서는 몇 십년 후 노동자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은 어둡다. 플랫폼 자본에 맞서는 공적 규제, 플랫폼 협동조합 (예, 미국의 ‘업앤고’(Up & Go)와 그린택시 협동조합), 공유 도시·비영리 플랫폼, 국유화 등 민주적 플랫폼이 필요해 보인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저자 닉 서르닉은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라는 기술적 하부구조를 전유해, 공공의 복리와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기아와 전쟁, 실업 등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고 생태계 위기를 해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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