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이병근/문화평론가  
 

 

인간관계의 보편적 가치는 건전한 동아리 문화서 시작
의리·예의 없는 친구사이는 언젠가 정적이 되고 말아
진정한 사이일수록 깍듯히 지키며 관계 유지 신경써야

 

 

실속 있고 넉넉한 밑동이 중심축이 되어 여러 줄기가 모여 꽃을 피워내는 이치를 어느 국어학자는 ‘동아리’라 해석했다. 일정한 목적으로 모인 여러 사람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형태를 우리는 고유어 ‘동아리’라고 한다. 지향하는 목적이 같거나, 직업, 취미 따위가 같아 모인 사람들의 단체를 ‘서클’이라는 외래어를 주로 사용하다가 우리말 살려 쓰기 운동에 즈음한 시기, 동아리라는 고유어가 학원가 학생운동 열풍에 편승하여 외래어 ‘서클’을 몰아낸 사실은 흔치 않는 일이며 유쾌한 일이다.

동아리의 구성원은 사람이다. 동아리의 실체는 정서 활동을 같이 하거나 이상적인 이념과 사상을 추구하는 바가 같은 동급끼리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동급이라 함은 친구의 개념으로 대체로 나이가 같지만 꼭 나이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는 동갑내기끼리만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연령대, 분야별 문화를 초월한 민족적 배경의 사람들과도 두터운 정분으로 의리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와 동일 성질로 ‘벗’이라는 말이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친해져 사실상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를 친구 또는 벗이라고 한다.

사전적 친구(親舊)는 원래는 친고(親故)와 같은 말로 ‘친척과 벗’을 뜻하는 한자어였다. 친(親)은 친척, 구(舊)는 ‘오랜’을 뜻한다. 그러던 것이 한국전통 사회에서는 친척의 의미 보다 ‘벗'의 의미로 더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벗’이라는 말의 쓰임에는 ‘책은 내 평생의 벗이다, 자연을 벗 삼아, 달을 띄워 놓고 술을 벗 삼아’ 등 사물에 대한 친밀한 자기정서를 비유적으로 붙어 쓰기도 한다.

친구 맺음에는 ‘벗’의 넓은 범위 안에서 건전한 종적질서를 가지고 서로 존중하고 분명한 경계를 유지하며 서로 절대적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친구지간이라도 나이 차이를 가지고 호형호제하는 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숭상하는 유교문화권에서, 특히 우리민족은 이 인정어린 ‘형님 아우’ 하는 끈끈한 질서로 의리를 도모하며 호연지기를 키워 왔다.

친구로서 ‘형 아우’는 ‘선후배’의 개념과 엄격히 구분이 된다. 선후배라는 유래를 굳이 유추해 보면 ‘민족수난기’ 때 일본인들이 들어와 그들의 군사, 법조계통의 강력한 조직에 의한 기수문화, 패권주의에 의한 계급문화에서 비록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선배님 후배님’하는 관계와 호칭이 전혀 맹랑한 것은 아니다. 선후배의 성격은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문과 예능 정도가 자기보다 우월하거나 앞서거나 따라가는 입장에서 정해지는 것이다. 또 이를테면 같은 학교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어려도 먼저 졸업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 부르는 것이다. 일본식 한자어인 선배라는 말은 한자문화권에서 많이 쓰고 있으나, 우리 고전역사 어느 시대에도 선후배라는 단어를 사용한 흔적이 없다. 선후배 호칭은 엄격히 따지면 우리 것이 아니다.

남자들 세계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단어들이 있다. ‘친구’, ‘의리’, ‘인정’이 그것이다. 논어에서 의리명정(義理明正)하고 견리사의(見利思義)라고 했다. ‘의리가 밝고 바르며 이익 되는 것을 보면 먼저 의리에 합당한 가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견리사의는 안중근 의사께서 옥중에서 즐겨 쓰시던 문장이다. 요즘 “나 때는 말이야”하는 나이 지긋한 사람을 ‘꼰대’라고 유머러스하게 비아냥거리는 유행어가 있다. 그 꼰대들의 ‘나 때’는 진정한 친구라면 ‘형 아우’든 ‘선후배’이든 ‘의리’를‘ 남자의 긍지와 신조로 삼아 한 살 차이라도 당연하게 여겨 여태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이 오히려 남자다움의 품위가 아닌가.

의리와 예의가 바탕이 되지 않는 친구사이는 마치 조선시대 송시열과 윤휴와도 같다. 둘은 나이 차이가 꽤 있어도 격의 없이 서로 친구가 되어 호형호제 하다가 나중에 사생결단을 내는 정적이 되고 말았다. 요즘 정치적 출세를 위한 포퓰리즘에 대중 앞에서 평소 절친한 형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앉으라고 호통을 치던 어떤 정객이 화제이다. 형의 사정(邪正)을 치지하더라도 의리를 팽개친 옹졸한 행동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위정자들이 득시글한 거리다. 그들의 근본도 ’사나이‘일 텐데, 인간관계의 보편적 가치는 건전한 동아리 문화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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