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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길 주필 회상록] 뭐 하러 왔노 <8> 중앙일보시절-1980년 ③

기사승인 2021.01.27  22:30:00

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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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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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굴뚝에서 힘차게 치솟는 매연은 미래의 부(富)를 예고하는 구세주의 몸짓이자 환경오염의 서막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울산매일 포토뱅크

 

‘나이는 세월이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것’
 뇌로 승부하는 바둑, 일찍 피고 일찍 저물어 가는 추세
 79년 이후 울산 환경오염 배출량 증가로 피해 심각

 

 

김병길 주필

‘나이는 세월이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것’이다. 젊은이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 보지만, 나이든 사람은 세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세월은 인간에게 일종의 ‘고백’을 요구한다. 늙음이란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며, 보다 심각하게 스스로를 폭로하는 것이다. 사십대는 삼십대보다, 그리고 삼심대는 이십대보다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노출하게 되는데, 살아온 세월이 더 오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기억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의 기억은 불변하는 기록이 아니라 언제든지 왜곡되고 변할 수 있는 해석에 가까운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기억은 우리가 판단을 내리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임을 잊어선 안된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5·유벤투스)는 온몸으로 골을 넣었다. 지난 21일 올 시즌 20호 골이자 개인통산 760호 골을 넣어 세계 축구 사상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다.

호날두는 오른발로 488골, 왼발로 139골을 넣었다. 양 발 모두 사용하지만 주로 오른발로 득점했다. 머리도 발에 못지않았다. 헤딩으로 왼발과 비슷한 131골을 기록했다. 팔로도 1골을 넣었고, 상반신을 이용해서도 1골을 기록했다. 페널티킥 골은 133골로 총득점의 약 17.5%를 차지했다.

15년간 호날두의 골인기록은 기억만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의 온몸은 축구공에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당연히 그 반응은 그가 나이가 들수록 익숙해지고 순간적인 동작으로 유연하게 이어진다. 비록 젊은시절 한 때라고 하지만 그의 몸과 공은 또 다른 세계를 이루며 늙어간다.

자꾸만 어려지는 ‘바둑 나이’를 염려하는 박치문 바둑 해설가의 얘기를 옮겨본다.

지난주 치러진 9회 응씨배 준결승에서 2000년생 두명이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며칠전 21세가 된 한국의 신진서와 중국의 셰커가 그들이다. 4강까지 확대해도 평균나이는 22세에 불과하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전성기가 너무 빨리 오고 빨리 끝난다.

9번의 응씨배를 통해 바둑 나이를 살펴봐도 바둑 나이는 갈수록 어려진다. 1회 응씨배가 열린 1988년으로 돌아가면 4강전은 조훈현(35)-린하이펑(46), 녜웨이펑(35)-후지사와 슈코(63)의 대진이었다.

평균 나이는 44.7세. 특히 63세 슈코의 분전이 놀라왔다 그는 고목처럼 마른 팔을 뻗어 녜웨이펑을 몰아붙였다. 이런 광경을 이젠 영영 볼 수 없을 것이다. 조훈현은 이듬해 36세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92년 2회 대회는 4강 평균 연령이 30.25세였다. 평균연령이 계속 낮아졌지만 이때까지는 바둑의 전통적인 이미지가 살아 있었다. 

바둑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노장도 승부가 가능하다. 바둑은 인생의 경험도 중요하기에 연륜도 승부의 긍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40대 명인이 진정한 명인”이라는 옛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다시 나이 얘기로 돌아가면 뇌를 쓰는 바둑은 몸을 쓰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조금 일찍 피고 조금 일찍 저문다. 왜 그럴까. 바둑이 천재들의 놀이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뇌가 몸보다 더 빨리 열리고 더 빨리 닫힌다는 의미일까. 생물학적인 문제는 알 수 없지만 바둑 나이가 더 이상 낮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지사와 슈코는 30년 후배 조치훈과의 결전을 앞두고 “그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한 가닥만 보지만 나는 두 가닥을 본다”고 호언했다. 듣는 이를 웃게 만들던 그런 목소리가 바둑의 또 다른 재미였는데 이제 다시 듣기 힘든 추억이 됐다는 것이 박치문 바둑 해설가의 아쉬움이다.
1980년 울산, 필자의 30대 중반 시절의 울산을 추억하면서 잠시 축구와 바둑 얘기로 쉬어가고 있다.

지난회에 서술한 신군부의 득세와 5·18 광주사태, 그리고 언론사 통폐합 조치와 기자 대량 해직사태는 혼란스러웠다. 지방주재기자 철수명령 속에 졸지에 울산을 떠나야 할 날이 가까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엄혹한 신군부의 탄압에도 기자의 사명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 공해 역사라고 할 만큼 심각한 울산의 환경오염 고발에 나섰다.

1960년대의 우리나라 공업화의 유산은 엄청난 피해로 이 땅을 흔들기 시작했다. 공장 굴뚝에서 힘차게 치솟는 매연은 미래의 부(富)를 예고하는 구세주의 몸짓이었다. 공업화와 함께 공장 굴뚝의 연기로 대변되는 환경오염의 서막을 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의 울산이었다.

지역 곳곳의 환경오염으로 황폐화하고, 주민들의 아우성은 높아지고 있었다. 석유화학공단에서 내뿜는 대기오염 물질에 의한 피해가 가시화된지도 오래였다.

1979년 이후부터는 환경오염과 피해발생 형태도 우발적인 사고는 줄어든 반면 오염원의 증가로 배출량 증가에 의한  피해가 심각했다. 이에 따라 농작물 보상액은 연간 3억여원에 달해, 2021년 액수로 환산하면 300억여원은 될 것이다.

다음회에는 정국 급변에 따른 지역 동정과 각종 사건사고를  회상해 보기로 한다.

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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