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울산 동구의 한 공사현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정상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 27일 울산 남구의 한 공사현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당일부터 설 연휴에 들어가면서 공사장 문이 닫혀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
작업 기일 촉박 공사 외 대부분 현장 설 연휴 구실로 장기휴무
민노총 건설노조 “‘1호’ 피하려는 꼼수…막무가내 휴업 안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 울산 곳곳의 건설현장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공정도 멈췄다. 다가오는 설 연휴를 구실로 일제히 이른 연휴에 들어간 건데, 공기를 앞당기려고 휴일에도 작업하는 건설현장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1호’ 처벌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사태를 막기 위한 ‘처세’라는 지적이다.

27일 취재진이 찾은 남구와 중구의 대규모 건설현장은 모두 문이 잠겨 있었다. 현장사무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당 건설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직원 격려 차 설 연휴를 앞당긴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건설업계 특성상 토요일까지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형 사업장은 예외 없이 설 연휴에 들어갔다”며 “1호 처벌 기업 낙인 피하려는 꼼수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게다가 건설기계를 운영하는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임대료를 받고 사는데, 처벌법 무섭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휴업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법 시행에 발맞춰 건설업계가 공사장 문을 걸어 잠근 채 설 연휴에 들어가면서 일부 경비 인력을 제외하면 현장은 적막만 가득했다. 레미콘 타설 등 까다로운 공정 중이거나 작업 기일이 촉박해 공사를 진행 중인 곳도 있으나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아파트 현장 대부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오늘부터 공교롭게도 대부분 휴무에 들어갔다. 업계 특성상 언제, 어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법 시행 초기에 '1호 사건'의 대상이 되는 것은 피해 보자는 전략으로 보인다.

특히 건설·제조업은 다른 업종보다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의 57%가 건설사에서 나왔고, 2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 중 71%가 건설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제조업도 20%가량을 차지해 건설·제조업에서만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80%가량이 발생했다.

포스코건설의 경우 울산 남구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현장을 비롯해 전국 현장에 이날부터 이틀 동안 ‘휴무 권장 지침’을 내려보냈으며, 설 연휴 전후에도 본사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사고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울산 중구지역 아파트단지 시공을 맡고 있는 건설업계의 ‘맏형’ 격이자 시공능력평가 순위 1위인 현대건설도 이날을 ‘현장 환경의 날’로 정해 전국 모든 현장의 공사를 중단했다. 현장에는 정리 정돈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겼다.

하루 뒤인 28일에도 현장 문을 열지 않고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이 참여하는 안전 워크숍을 진행한다.

현대건설은 설 연휴가 끝나는 시점도 내달 2일에서 4일로 이틀 연장했다. 현대건설이 동절기 주말에 안전사고가 많은 점을 고려해 내달까지 주말과 공휴일 작업을 전면 금지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날부터 장장 11일 동안 휴지기를 갖는 셈이다.

울산 북신항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대우건설 역시 공사현장에 한해 설 연휴 시작 시점을 이날로 이틀 앞당겼다. 또 현장의 자체 판단에 따라 내달 3∼4일까지 휴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공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곳도 있었다.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은 필수 인력뿐만 아니라 현장 노동자 모두 정상적으로 출근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해당 건설업체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무서워서 공사를 멈추는 건 업무에도 좋지 않고 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부터 본사뿐만 아니라 하도급업체 교육도 전담해 안전조치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한편 민주노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울산운동본부도 이날 중대재해처벌법의 즉각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서 “법 제정 후 1년이란 시간 동안 경영계가 한 일은 현장의 위험을 개선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그저 대형 로펌을 끼고 법망을 피하는 방법과 ‘처벌 1호’를 피하려는 눈물겨운 노력들 뿐이었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사업장 규모로 생명을 차별하는 법이 됐다”며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조항을 즉각 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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