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villain)’은 수퍼히어로 무비에 등장하는 악당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 말의 역사가 흥미롭다. 빌런의 어원인 ‘빌라누스(villanus)’는 고대 로마의 농장(villa)에서 일하던 농민이었는데,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다 도둑질과 폭력 등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들이 많아지며 악당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다른 악역들에 비해 제 나름의 아픈 사연과 과거가 있는 악당들인 셈이다. 최근 들어 선하고 정의롭기만 한 고전적 캐릭터 대신 다양한 개성을 가진 빌런 캐릭터가 아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경우를 만난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괴롭히던 마녀를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하며 재탄생시킨<말레피센트>(2014)를 비롯해, 스파이더맨의<베놈>(2018), 배트맨의 가장 강력한 숙적이자 광적인 악당의 대명사인<조커>(2019) 등 기존의 정의로운 캐릭터가 아닌, 악당의 재창조가 하나의 흐름처럼 보인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빌런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평면적이고 고전적인 캐릭터는 더 이상 쿨(cool)하지 않게 보여서일까? 지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은 선일까 악일까? 그는 고전적인 대통령상을 거부했기 때문에 극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속 캐릭터에서도 이런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약자를 괴롭히는 ‘진짜 나쁜’ 인간들보다 사연 있는 빌런들은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크루엘라, 이미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101 달마시안>에서 연기한 마녀에 가까운 캐릭터를 현재 가장 핫한 배우인 엠마 스톤이 맡을 거라 발표됐을 때부터 영화 팬들은 머리의 절반은 하얗게, 절반은 까맣게 물들인 팬아트 그림을SNS에 올리며 환호했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의 악당이 주인공이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현실이 그만큼 반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세상이고,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디즈니의<크루엘라>는 그래서 기존 디즈니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도약이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프로젝트 중에서<알라딘>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던 시점에 제대로 된 한 방을 보여준 셈이다. 디즈니의 작품 중 빌런까지 주인공으로 상정하면 얼마나 무궁무진한 세계가 열리는 건지! 록 넘버로 채워진 OST와 순수하게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패셔너블한 화면,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 이 두 엠마의 팽팽한 연기대결까지.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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