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교통체증에 눈물이 다 났다. 한국이 이렇게나 발전했다는 모습이니까." 혈기 왕성했던 17세 소년은 저물어 가는 해처럼 앙상한 얼굴의 88세 노인이 돼 한국을 다시 찾았다. 캐나다인 참전용사 로널드 존 포일은 "지난 70여년간 내 머릿속에는 한국과 전쟁, 그리고 비극이라는 세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캐나다군 2만6,000여명 중 500여명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또 다른 캐나다 참전용사는 "여자친구와 헤어져 홧김에 자원입대해 한국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한국을 위해 헌신한 내 모습을 보고 여자친구가 마음을 돌려 결혼했고 이후 50년을 함께했다"고 자랑했다.
 한국전쟁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떨어지지 않으려 부둥켜안고 있는 가족을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송했던 일인데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고도 했다. 서울 도심을 살피며 "내 젊음이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노병도 있었다.
 19세에 캐나다 육군으로 1년간 참전한 고(故) 존 로버트 코미어 유해는 지난 20일 부산 유엔군 묘지에 안장됐다. 고인은 지난해 11월 사망 직전 "동료들이 있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희망했다.
 6·25전쟁 72주년을 맞아 9개국의 유엔참전국 참전용사와 가족 등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웅들을 모십니다’라는 주제의 초청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초청자 중 최고령자는 96세의 호주인 제럴드 셰퍼드 옹이었다. 그는 1952년 6월부터 10월까지 해군 이등병 선원으로 해주만 전투 등에서 맹활약하고 무사히 귀국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는 국가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72년 전 오늘 우리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다. 안보가 튼튼하지 않다면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기적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엊그제 이태섭 인민군 총참모장이 함경남도 원산에서 경북 포항까지 그려진 작전지도를 걸어놓고 김정은 국방위원장 앞에서 브리핑 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순간인지를 보여줬다. ‘노병의 눈물’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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