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건 울산시 문화재위원·공학박사
한삼건 울산시 문화재위원·공학박사

 국보 ‘천전리 각석'이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 3월 13일 김두겸 시장은 새로 이름이 바뀐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명칭이 쓰인 국보지정서를 언론에 소개했다. 2023년 5월에 울주군이 처음으로 울산시에 명칭 변경 신청을 하고, 전문가 검토와 울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그해 7월에 울산시가 문화재청에 명칭 변경 신청을 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에 의한 실태 조사와 2차례의 검토를 거쳐서 드디어 올 2월 15일에 개최된 문화재위원회에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결정했다. 처음 이 유적이 동국대 조사단에 의해 학계에 보고된 것이 1970년이고, 1973년에 국보로 지정됐으니 만 51년 만에 이름이 바뀐 것이다.

 무릇 이름이란, 정확하고 알기 쉬워야 한다. 그런데‘각석’이라는 용어는 ‘그림과 글을 새긴 돌’이라는 뜻은 담고 있지만 정작 새겨진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사실 국내 30개소 정도 되는 암각화 유적 어디에도 ‘각석'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은 없다고 한다. 또한 ‘각석'과 ‘암각화’ 유적 모두 영어로는 ‘페트러글리프(Petroglyph)'라는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 그뿐 아니다. 그간 암각화에 대한 조사연구가 크게 늘어나고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각계에서 명칭 변경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특히 이번에 전격적으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따른 명칭 일원화가 요구됐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유산 신청은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은 지난 2020년에 잠정 목록에 등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반구천의 암각화’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5일에는 세계유산센터의 완성도 검사를 통과 했는데, 이것은 신청서의 형식 요건을 만족했다는 의미로 올 한 해 동안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이코모스)에 의한 서류심사와 현장실사, 종합토론 등의 심사 과정을 잘 통과하면 내년 7월경에 예정된 제47차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반구천의 암각화’는 우리나라에서 17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그동안 1995년에 등재된 불국사와 석굴암을 시작으로 종묘, 수원화성, 남한산성, 양동과 하회마을, 고창 등의 고인돌, 경주역사유적지구, 서원, 왕릉, 가야고분 등의 세계유산이 탄생했지만 아직 국내에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암각화 유적은 없는 만큼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이 된다면, 울산의 큰 자랑거리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와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곳은 대곡천 유역이다. 두 유적 간의 직선거리는 불과 1.3㎞ 정도이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3㎞가 채 못 된다. 큰 골짜기라는 의미의 ‘대곡'이라는 이름은 ‘한실'이라는 우리말을 조선총독부가 바꾸면서 생겨났다. 즉 지금의 대곡천은 여러 기록을 보면 ‘반구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골짜기에는 반구대와 반구마을도 있고, 이미 지난 2021년 5월에 지정된 명승도 이름이 ‘울주 반구천 일원'이다. 이런 이유로 지근거리에 있는 두 암각화 유적의 지리적 조건과 역사성을 가진 '반구천'이라는 이름에서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세계유산 명칭으로 결정됐다. 

  모든 이름이 그렇듯 이름이야말로 정체성의 표상이다. 처음 ‘천전리 각석'은 바위 면에 새겨진 무려 800자에 이르는 6세기 신라시대 상황이 기록돼 있어서 주목받았다. 이 유적이 1973년에 국보로 지정됐지만, 반구대암각화는 이보다 23년이 늦은 1995년에 국보가 됐으니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천전리 유적의 폭 9.5m 높이 2.7m에 이르는 넓은 바위 면에는 신라시대 명문 800여 자 외에 선사시대에 새겨진 그림이 전체 면에 가득하다. 이번 명칭 변경으로 이 그림들도 더욱 잘 알려지게 됐고, 신라시대에 새겨진 문자도 명문이라는 명확한 이름을 얻게 됐다. 새 이름을 널리 알리고 또 사랑하자. 한삼건 울산시 문화재위원·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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