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태 동남지방통계청장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한테 예쁘게 잘 보이려고 한다. 자연 상태의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것을 보면 그건 아마 본능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처럼 남에게 잘 보이려는 체면문화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유독 심하다고 느껴진다. 쉬는 날 등산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유명제품의 값비싼 등산복에 모자, 배낭, 신발을 착용하는데 아마 그 제품 값은 웬만한 봉급생활자로서는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여윳돈이 생기면 어디에 쓰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얼굴과 몸매를 가꾸는데 쓰고 몸에 걸치는 옷, 가방, 신발을 명품으로 바꾼다. 그리곤 자동차와 집을 바꾸거나 새롭게 단장한다. 이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겉치레보다는 관광 등을 통해 머릿속을 채우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구입해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고 한다. 휴대폰의 신제품이 나오면 구식이 되지 않기 위해 신제품을 구입한다. 실제로 휴대폰의 약정기간 2년을 채우는 청소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휴대폰을 자주 바꾼다는 말이다. 남자들은 비싼 술 마시는 게 다른 사람한테 자랑거리가 되고 여자들은 고가의 보석과 명품을 지니는 게 자랑거리가 된다.
특히 결혼문화를 보면 체면문화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일본이나 서양 사람들의 결혼엔 아주 절친한 소수의 사람만 초대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한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고 호화스런 곳에서 식을 올린다. 호화로운 예식장의 한 끼 밥값은 서민들의 한 달 밥값에 이르기도 한다.
그 뿐인가? 고가의 예단과 혼수품 때문에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고가의 혼수품을 장만해야 한다. 청첩장을 받으면 체면 때문에 안갈 수도 없고 체면 때문에 부조금을 적게 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액수에 따라 친분관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서양사회는 자신이 우선시되는 개인주의이고 한국사회는 나보다 남을 의식하는 공동체의 체면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 사람의 조상이 수렵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편리한 대로 실리적인 역할이 강조된데 비해, 우리의 조상은 농경문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공동체의식이 많아 협동생활과 위계질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 지가 무척 관심거리다. 그래서 한국사회엔 체면문화가 발달해 어디를 가건 남의 이목을 의식하곤 한다. 떨어지지 않고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도 유행이 지나면 입지 않고 새로운 옷을 사서 입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가끔 자살하곤 하는데 이런 것들이 남의 눈총을 의식한 체면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가 주소를 표기할 때의 순서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소속이나 명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광역시, 구, 동, 번지 그리고 성(姓)과 이름을 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내가 중심이기 때문에 우리와 정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가장 먼저 쓰고 성(姓), 번지, 동, 구, 광역시 순으로 표기한다. 그만큼 사고방식이 반대인 것이다. 소속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는 나를 평가하는 주변이 먼저지만, 나를 중시하는 서양문화는 내 개인의 개성이 가장 우선시 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도 농경사회가 아니라 이미 산업사회로 바뀐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과소비를 촉진하는 체면문화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실속있고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느 조사에 의하면 체면을 중요시 하고 과시욕이 큰 사람일수록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더라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짐작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