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순왕 아들 김덕지가 시조
학천공파·학암공파 나뉘어 대이어
울산에 361가구 1천여명 거주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내외보(內外譜)인 『울산김씨내외족보』(蔚山金氏內外譜)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일반에 최초 공개되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울산김씨내외보(蔚山金氏內外譜)의 표지(좌)와 울산김씨내외보(蔚山金氏內外譜)의 제1편.

‘내외보(內外譜)’란 아들뿐만 아니라 딸의 자식도 기록한 족보로, 조선전기 족보형태이다. 학계에서는 조선시대 족보가 남성 중심으로만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 

‘내외보’라는 명칭으로 된 가계기록이 오늘날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알려진 내외보로는 1689년 작성된 『울산김씨내외족보』(蔚山金氏內外譜·개인소장)와 1694년에 작성된 『충주박씨내외자손보』(忠州朴氏內外子孫譜·한국족보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울산김씨내외족보』(蔚山金氏內外譜)는 울산김씨 본손(本孫)과 울산김씨의 외손(外孫)을 모두 수록한 울산김씨 내외족보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김효경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내외족보를 발간하는 이유는 외손도 친자손처럼 여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족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울산김씨보다는 울산김씨의 외손 수가 훨씬 더 많은데 친손이 20%, 외손이 80%를 차지한다. 그것은 외손을 표기하되, 단순히 울산김씨의 사위만이 아니라 ‘그 사위의 사위’, 혹은 ‘그 사위의 사위의 사위’를 끝까지 추적해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 초기에 발간된 족보에서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는 표기법이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로 알려진 『안동권씨족보』(일명 안동권씨성화보·1476)나 『문화유씨세보』(일명 문화유씨가정보·1565) 역시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족보의 제목은 ‘내외족보’가 아니라 단지 ‘족보’ 또는 ‘세보’로만 돼 있어 ‘내외’라는 명칭이 붙은 족보는 『울산김씨내외족보』가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울산김씨의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로, 현재 울산김씨는 전라도 장성을 중심으로 학천공파(鶴川公派), 울산 강동을 중심으로 학암공파(鶴庵公派)로 나뉘어 세를 이어오고 있다. 

울산에는 북구 죽전와 명촌, 달곡, 주렴마을 등지에 모두 361가구 1천여명의 울산김씨가 흩어져 살고 있다. 

울산김씨 후손으로는 고려대학교를 세웠던 인촌 김성수,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전라도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河西) 김인후 등이 알려져 있다. 울산에 민간기업인 삼양사를 설립, 조국근대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연수씨도 울산김씨다. 광주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삼부자창의(三父子倡義)’로 유명한 고경명 장군은 울산김씨의 사위였다. 

울산 죽전마을에는 600여년 된 활만송이 울산김씨 세전송(世傳松)으로 지정,보호돼 음력정월과 10월에 소나무 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채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울산김씨는 매우 명망 있는 씨족으로, 문관의 후예답게 현재 교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문중들이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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