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환 울산광역시 중구의회 의장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물’은  만물 가운데 서로 다툼이 없는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함을 뜻하는 말이다. 

특히 선현들은 이러한 물을 지혜에 빗대어 표현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하여 물의 막힘없는 특성을 찬양하거나 “흐르는 물은 곧 지혜의 이치”라 하며 자연스럽고 썩지 않는 물의 성질을 지혜에 담아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막힘이 없고 썩지 않는다 했다. 즉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며 지혜로움 역시 자연의 이치를 순응하며 따를 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을 뜻하는 ‘지혜’는 지식과는 또 다른 개념으로 현명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삶을 영위함에 있어 법과 관습, 지식과 앎 등 중요하지만 각자가 지닌 지혜야 말로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얼마전 울산시의회가 행정사무감사를 각 구·군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조례안 개정에 나서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시의회가 발의한 조례안은 행정사무감사와 관련한 지방자치법과 같은 법 시행령 혼성규정에 따른 해석상 논란의 소지를 없애고 조례를 명확히 정비한다는 명목이다. 

개정 내용은 행정사무감사 조례 제6조 제1항 제5호의 ‘지방자치단체에 위임 또는 위탁된 사무를 제외한다’는 문구를 삭제한다는 것이다. 울산시가 각 구·군에 위임한 사무는 모두 629건으로 이 중 조례에 근거한 위임, 위탁사무는 406건이고 나머지 223건은 규칙에 근거해 위임한 사무다. 만약 울산시의회 조례가 통과되면 시의회가 각 구·군의 감사·조사권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혼선규정에 따른 해석상 논란의 소지를 없애고 조례를 명확히 정비하는 등 법률로 정해진 권한을 갖겠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이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데 있다. 달리 말해 지혜롭지 못하다. 지금의 지방정부는 엄연히 광역의회와 기초의회가 공존하고 있고 그 역할과 기능이 구별돼 있다. 하지만 광역의회의 이번 조례 개정은 기초의회 기능과 역할을 침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울산시의회는 이처럼 민감한 사안을 다루면서도 구·군은 물론 기초의회 그 어느 곳과도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추진했다. 지방자치 근간을 흔드는 비민주적 행태며 지방분권강화의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란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울산시의회의 조례개정은 크게 네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위임사무의 기준과 범위가 불명확한 점이다. 울산시 위임사무의 예를 보면 사회복지사업에 관한 사무, 도로에 관한 사무 등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게 설정돼 있고 각 구·군의 국·시미 매칭사업 역시 전체 예산 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아 이를 단순한 시비 매칭 위임사무로 보기 애매하다. 

둘째, 지역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할 주체인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간 갈등만 유발하고 기초의회 고유의 기능과 역할을 위축시킬 개연성이 높다.

셋째, 현 정부가 내세우는 지방분권 강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울산시의회가 각 구·군으로 행정사무감사를 확대시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중감사로 인해 각 구·군의 행정력 낭비를 초래함은 물론 울산시의회 스스로도 업무가 가중, 물리적인 어려움과 함께 광역의회 기본 기능마저 제대로 이행하는데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의회의 일방통행식 조례 개정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 여론 역시 감사와 조사권한을 기초의회로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 옥상옥의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君君臣臣父父子子)”란 말로 도의 근본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에 있음을 가르쳤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됨을 강조한 ‘각득기소(各得其所)’란 말 역시 제 위치에서 그에 걸 맞는 역할과 기능이 곧 번영과 안녕의 초석임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광역의회든 기초의회든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고, 또 고려해야 할 것은 주민을 위한 ‘대의’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점이다. 

권한에 대한 욕심을 내세워 이전투구 식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서로가 현 위치를 돌아보고 무엇이 울산시민과 주민을 위해 ‘흐르는 물’처럼 지혜로운 것인지를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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