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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통신] 울산공단 60년, 울산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

기사승인 2022.01.26  22:30:00

김진영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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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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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2월 열린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맨 왼쪽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김진영 편집이사

울산공단 60년 역사는 대한민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
부정축재 모면하려는 기업인과 군사정부 탐욕 뒷거래
개발논리 희생으로 산업화 선봉, 정부 홀대는 사라져야

 

설 연휴가 지나면 울산공업센터가 첫삽을 뜬지 딱 60년이 되는 날을 맞이한다. 흔히 울산공단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라고 이야기한다. 잠시 6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62년 2월3일 울산 매암동 허허벌판에서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신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다”고 선언했다. 바로 한 해전 치밀하게 준비한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혁명정부는 해를 넘기면서 조급해졌다. 선글라스와 검은 장갑만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 했던 박정희에게 일제 관료 출신 안경모는 울산을 제물로 대한민국을 바꾸자는 포트폴리오를 펼쳤다.

안경모는 박정희 앞에서 열변을 토했다. “의장님, 울산은 동해와 태화강을 함께 끼고 있고 일제가 정유공장을 옮기는 작업을 할 정도로 탐내던 땅입니다. 제철과 정유공장, 비료공장 등 큰 시설을 모아 보여주면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울 겁니다” 안의 브리핑을 듣던 박정희 의장의 낮 빛이 변한 순간이었다. 안경모가 누군가. 훗날 울산공업센터 건설본부장으로 활약한 안경모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철도국 직원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원산에 있던 정유공장의 일부를 뜯어 울산으로 옮기던 중 패전을 맞았다. 정유공장 이전은 당시 조선축항주식회사 사장으로 있던 이케다(池田佑忠)라는 일제의 사업가가 10년 전부터 울산을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한 도시계획 플랜 중 하나였다. 이케다와 안경모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패전으로 도망갈 때 이케다는 울산개발 비밀지도를 안경모 품에 깊이 찔렀다. 머리로 친일한 자는 생계형 친일이라는 면죄부로 자유당 정권과 공화당 정권을 넘나들며 맹활약했다.
혼란의 시대가 지나고 군사정권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을 때 안경모는 품속에 간직했던 이케다의 비밀지도를 이병철 당시 삼성물산 사장에게 슬쩍 흘렸다.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이병철은 기업인을 부정축재로 몰아 한방에 보내겠다는 박정희와 부산 해운대에서 마주앉았다. 그 시점이 1962년 1월2일이다. 박정희는 그날 부산 해운대에서 이병철, 이정림, 남궁련 등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댔다. 자리를 함께한 기업인들의 면면은 대한민국 산업사의 기수들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함께한 면면도 울산과 끈끈한 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정림은 시멘트업계의 개척자였고 천일고무, 대한양회 등을 설립한 주역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기업인들은 군사정권의 미래비전에 전재산을 쾌척하겠다며 울산공단 출범에 손도장을 찍었다. 부정축재의 낙인을 벗어나려는 기업인들의 계산과 군사정부의 탐욕이 뒷거래를 한 순간이었다.
안경모의 실무작업과 박정희의 책사 김용태(당시 정보부 경제담당 고문)의 설계로 울산공단은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1962년 2월3일 울산 대현면 고사리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김용태는 기공식을 이틀 앞두고 동아일보에 특종 보도자료를 건넸다. 울산을 50만 인구가 자리잡는 공업센터와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고사리 일대를 중심으로 울산 전역 4,900만평의 부지에 정유공장과 종합제철소 등이 들어설 공장지구와 상가지구, 주택지구를 만드는 계획이 펼쳐져 있었다. 곧바로 건설의 나팔이 울렸다. 박정희의 말대로 울산 하늘은 검은 연기로 덮였고 천혜의 해안은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할퀴고 뒤집고 파헤쳐졌다.
딱 60년이 지났다. 군사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물을 보이기 위해 선택한 울산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역이 됐고, 수출전사로 몇십년을 내달렸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성을 실현”하고자 했던 박정희의 꿈은 현실이 됐지만 60년의 기념일은 초라하기 짝이없다. 50주년 만해도 울산시가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17가지의 기념사업을 했지만 60주년은 설날 연휴에 묻혀 슬쩍 넘어가는 분위기다. 문제는 60년 이라는 시간과 대한민국 근대화, 공업입국과 맞바꾼 울산의 현실이다. 울산 공단 60년이 대한민국 현대사라고 이야기 했던 것은 그 60년에 울산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공단 건설과 함께 매일같이 이어지는 산재사고는 목숨이 담보였다. 한꺼번에 십수 명이 숨지는 사고도 이어졌다. 댐으로 마을이 수몰되고 풍광좋던 해안과 산하가 할큄을 당했다. 이름모를 병에 호흡이 막혀도 조국근대화의 깃발 아래 울산인들은 들숨만 내쉬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그 결과다. 울산은 7대 광역시, 120만 시민이 거주하는 대한민국 산업수도라는 위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구조적인 모순을 가진 도시가 됐다. 교통인프라는 기본이고 의료와 교육부문부터 정부기관과 문화관광 기반까지 울산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허울 좋은 산업수도의 실상은 외면당하고 소외받고 홀대당하는 도시가 됐다. 해운대에 모여 울산을 찍은 정권과 기업의 후예들은 울산의 땅을 파헤치고 물과 공기를 더럽힌 장본인이지만 그들에게 울산에 대한 원죄의식은 없고 그저 공업입국의 개발논리와 부의 창출이 꼭짓점이었다. 바로 그 세월이 60년이다.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기공식의 상징은 장생포 문화창고에 남아 있을 뿐이다. 대선과 지선에 나서는 지역의 리더들의 울산발전 목소리는 요란하다. 그 요란함을 가슴에 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앞으로 울산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주길 기대할 뿐이다.

김진영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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